지난달 말 독일 보훔에서 열린 2025 라인-루르 하계 유니버시아드(U대회) 육상 400m 계주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땄다. 단거리 선수들이 겨루는 400m 계주에서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민준(서천군청), 나마디 조엘진(예천군청), 이재성(광주광역시청), 김정윤(한국체대)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38초50에 결승선을 통과, 2위 남아공(38초80)을 넉넉하게 제쳤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한 무대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도 스프린트 종목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한국 단거리의 희망으로 떠오른 4명의 100m 기록은 어떨까.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조엘진이 10초30으로 가장 빠르다. 이어 이재성이 10초32, 서민준과 김정윤은 나란히 10초35다. 솔직히 국제 무대에서 경쟁하기엔 대단치 않다. 우리나라엔 아직 100m를 9초대에 달린 선수가 없다. 지난해 국가대표를 은퇴한 김국영(34)이 2017년에 세운 10초07이 최고 기록이다. 우리와 체격 조건이 비슷한 중국은 2015년, 일본은 2017년 ‘10초 벽’을 깨뜨렸다.
U대회 계주 금메달리스트의 100m 최고 기록을 더하면 41초32다. 그런데 이들은 100m씩 이어 달린 계주에선 자신들의 합산 기록보다 2.82초 빨리 달렸다. 개개인의 스피드는 뒤지지만, 원활한 배턴 터치(baton touch)로 속도를 유지하면서 경쟁자들을 모두 제쳤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일본은 남자 400m 계주에서 아시아 신기록(37초60)으로 자메이카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일본은 “완벽했다”는 찬사가 쏟아진 배턴 터치로 4명의 100m 합산 기록보다 2.78초를 줄였다. 그런데 이번 U대회 한국 대표팀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일본보다 0.04초 더 기록을 단축한 것이다.
400m 계주에선 개인 스피드보다 손발이 들어맞는 팀워크가 훨씬 중요하다. 팀워크의 핵심은 배턴 터치고, 사실상 여기서 승부가 갈린다. 전력으로 달리는 선수가 도움닫기를 시작한 다음 주자의 손에 안전하게 배턴을 넘기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반복된 훈련이 필수고, 더 어려운 숙제는 4명이 완벽하게 호흡을 맞춘 ‘원팀’이 되는 것이다. U대회 계주 대표팀 맏형 이재성은 “걸어 다닐 때도 후배들과 배턴을 주고받는 훈련을 했다”고 말했고, 매번 첫 주자로 뛰는 서민준은 “서로를 믿기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육상 단거리 최강 미국은 100m를 총알처럼 내달리는 선수가 즐비하지만, 남자 400m 계주에선 영 맥을 못 춘다. 2008년 베이징 대회부터 작년 파리까지 최근 5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은커녕 ‘노메달’ 수모를 겪고 있다. 개성 강한 스타들끼리 단합이 되지 않아 배턴 터치 때 실수하거나 실격을 당한 탓이다. 미국 육상의 전설 칼 루이스가 “엉망진창이다. (계주 팀에) 리더십이 없는 게 분명하다”고 꼬집을 정도다.
계주 대표팀의 성장을 보면서 사회의 발전도 배턴 터치의 연속임을 떠올린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허약한 주자였던 한국은 경제 발전 레이스에서 근대화, 산업화, 정보화로 이어지는 배턴 터치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배턴 터치가 매번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배턴 터치는 선거를 통해 이뤄지는데, 앞 주자와 뒷 주자의 호흡이 안 맞는 것을 국민들은 더러 보았다. 먼저 뛴 선수의 실수든, 기다리는 주자의 준비 부족이든 배턴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놓치면 경주는 그걸로 끝이다. 어떤 상황에도 배턴을 꽉 움켜쥐고, 다음 주자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