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공계 기피 현상을 다룬 TV 토론을 보다가 서울대 공대생조차 소위 대치동 시각에서 보면 ‘의대 못 가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루저’라는 시선 때문에 자긍심과 기가 꺾인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의사 친구들을 볼 때, 보람 있는 직업이지만 매일 격무에 시달리며 평생 환자를 대하는 직업이 과연 좋은가 하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런데 ‘루저’ 표현을 들으니 일부 이공계생이 자퇴하고 의대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왜 수그러들지 않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우선 ‘이공계는 루저’라는 대치동 시각은 사실이 아니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학기술 정책 브리프’ 글에서 “과학고·영재고 졸업생 2000~3000명은 의학 계열 진학생과 비교해도 최상위 인재”라며 “이들의 90% 이상, 대학 입학 후 의대 선택까지 감안해도 80% 이상이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고 했다. 의대 쏠림 현상과 별개로, 최상급 인재들이 의대가 아닌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는 루트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 좋아서, 과학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이공계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일부에서나마 ‘루저 아니냐’는 시선을 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과학고 루트 밖에서는 성적 좋은 학생이 의대로 쏠리는 것은 사실이고, 그나마 키운 과학기술 인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걱정이 크다. 특히 범용 인재보다는 소수라도 창의적인 인재가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이해진(네이버)·김범수(카카오)·김택진(엔씨소프트) 이후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100만명 이상을 먹여 살릴 창업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의 영향으로 봐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과학기술인이 자부심을 느낄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공부심’을 갖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이공계 출신에게 양질 일자리를 제공하고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창의적 소수 인재가 중요한 시대인 만큼 지원 대상 폭을 좁히더라도 충분한 보상이 중요할 것 같다.
최근 서울대 공대는 중국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해외 석학을 유치한 ‘천인(千人) 계획’과 유사한 ‘한국판 천인 계획’을 제안했다. 더 늦기 전에 이런 정책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 일본도 2023년부터 ‘특별고도인재제도(J-Skip)’를 통해 일정 조건을 갖춘 해외 우수 인재에게 연봉 4000만엔(약 4억원) 이상 등 파격적 우대 조치를 하고 있다.
충분한 보상만큼 중요한 것은 이공계를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일 것이다. 한국 대학에서 정년퇴직하고 중국 푸단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로 간 이영백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중국 과학의 미래가 밝은 이유는 청소년부터 과학자가 최고 직업이라 인식하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 수학·과학 영재들에게 멘토로 조언해 준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결국 의대 가는 것을 보고 허탈했다”고 말했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성적 좋은데 왜 의대를 안 갔냐”고 묻는 대신 “원하는 공부 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격려했으면 좋겠다. 사실이기도 하다.
의대 쏠림 현상이 너무 강한데 언제 ‘이공부심’이 자리 잡을지 걱정할지도 모른다. 저출생도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가, 전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예산과 정책을 쏟아부으니 분위기가 반전했다. ‘이공부심’을 갖게 하는 것도 그 정도 국가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공계판 ‘출산 시 1억원’같이 학생과 학부모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이공계 우대 정책을 내놓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