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6일 일본 지바현 모바라 컨트리클럽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일본 골프 레전드 아오키 이사오가 지켜 보는 가운데 티샷을 하고 있다.(백악관 제공) /UPI 연합뉴스

프로 골퍼 아오키 이사오(青木功)는 일본 골프계의 상징 같은 존재다. 1980년 US오픈 준우승에 이어 1983년 소니오픈에서 일본 선수 최초로 미국 PGA투어에서 우승했다. 당시 마지막 홀의 그림같은 샷 이글은 골프 팬을 매료시켰다.

연간 80회 이상 라운딩을 즐길 정도로 골프광인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아오키의 플레이를 좋아했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를 적극 활용했다. 정상 만찬장에 아오키를 동석시켰다. 아오키와 환하게 웃으며 악수한 트럼프는 그의 퍼팅 실력이 예술이라고 칭찬했다. “아오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퍼팅 기술을 아베 총리는 따라 하면 안 된다”고 농담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2019년 5월, 나루히토 천황 즉위를 기념해 레이와(令和) 시대의 첫 국빈으로 트럼프가 다시 방문했다. 아베는 이번엔 트럼프, 아오키와 세 명이 지바현에서 골프 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런데, 아오키가 두 정상과의 골프 회동에 대해 월간지 문예춘추에 남긴 목격담이 흥미롭다. 트럼프와 아베가 머리를 식히며 가벼운 얘기를 나눴을 것으로 생각되나, 그렇지 않았다.

아오키는 “(내가) 나이스 샷이라고 말을 걸 새도 없이 두 사람은 공을 치면 곧장 카트로 돌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에 몰입했다”고 했다. 누구도 골프 스코어를 신경 쓰거나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 목적은 둘이서만 본심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고 했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도청 염려도 없는 골프장은 안성맞춤이 아니었을까. 뉴스를 통해 영상을 본 사람들은 두 정상이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을지 모르나 가까이서 봤던 내 인상은 다르다. 카트 안에서 진지하게 정치 이야기를 했다. 말 그대로 ‘골프 외교’였다.”

트럼프와 아베에게 골프는 외교를 하는 수단이었다는 것을 증언한 것이다. 마치 정갈한 식당에서 정성껏 준비한 요리와 격조 있는 와인이 성공적인 회담에 일조하듯이 말이다.

일본 신문 닛케이(日經)에 따르면, 트럼프와 아베는 2019년까지 모두 5차례 운동을 함께 했다. 총 16시간 10분간 필드를 함께 걸으며 모든 것을 논의하는 사이가 됐다. 정상 간의 유례없는 이 기록은 미·일 동맹을 한층 견고히 한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 간의 특별한 우정)’로 각인됐다.

오는 25일 트럼프와 첫 정상회담을 앞둔 이 대통령이 참고할 만한 성공 모델은 아베에게서 찾을 수 있다. 마침, 한미 두 정상은 지난 6월 첫 통화에서 골프 실력을 소개하고 ‘한미 동맹 라운딩’을 갖기로 약속했다. 이달 말 첫 회담에서 골프가 어려우면, 두 달 뒤 트럼프가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할 때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와 친분을 쌓기 위한 ‘골프 외교’ 제안이 불편하거나 다소 가볍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트럼프로 인해 상식 밖의 일이 현실이 되는 초(超)현실 시대가 아닌가. 트럼프는 스위스 대통령이 자신에게 기분 나쁘게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보다 높은 39% ‘관세 폭탄’을 때렸다. 로마 제국 황제를 연상시키는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주한 미군 잔류(殘留) 여부가 결정된다. 반도체, 의약품 등의 품목 관세가 그의 기분에 따라 수십 % 변동 가능하다.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7·8월호엔 ‘불필요한 국가(Dispensable Nation)’라는 글이 실렸다. 트럼프의 비정상적인 통치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이끌어 온 미국이 필요없는 국가가 됐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미국은 여전히 필수불가결한(indispensable) 나라에 더 가깝지 않나.

트럼프와 라운딩하던 아베는 벙커에서 그를 급히 쫓아가려다가 나뒹굴어 넘어질 정도로 둘의 관계를 중시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방미에서 골프 회동이 불발된다고 해도 APEC을 계기로 함께 라운딩하는 관계를 만든다면, 작지 않은 성과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