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정두언 전 의원은 정치를 그만두고 서울 마포에 일식당을 열었다. 여의도에서 멀지 않아 정치인들이 자주 찾았다. 단골 중엔 국민의힘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도 있었다. 주로 정 전 의원과 경기고·서울대 동문이거나 같은 상임위를 한 인연 등으로 친했던 사람들이었다. 가장 의외라고 생각한 사람이 이번에 민주당 대표가 된 정청래 의원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하동 정씨라는 것 빼고는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출신 지역이나 학교가 같은 것도 아니고 국회의원을 할 때도 가깝게 지냈단 말은 듣지 못했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그에게 정 전 의원과 무슨 인연이냐고 물었다. 정 대표는 “공천 탈락 후 종편 방송에 같이 나가면서 친해졌다. 내 지역구인 마포에 식당을 열어 자주 온다”고 했다. 정 대표는 정 전 의원을 ‘형’이라고 불렀다.

정 대표는 정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왠지 싸늘하고 주변에 벽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학생운동을 할 때도, 국회의원이 돼서도 늘 초강경파로 꼽혔다. 대학 때는 주한 미국 대사관저를 점거하고 방화를 시도해 징역 2년을 살았다. 초선 의원이던 17대 국회에선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벌이며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국회의사당을 누볐다. 투쟁과 농성이 일상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적이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공격했다. 같은 당도 예외가 아니다. 유시민씨는 정 대표를 “자기 맘에 안 들면 그 사람이 어느 정파에 속했든 공격하는 외로운 늑대”라고 했고, 정 대표는 유씨를 “간신”이라고 했다. 정 대표가 20대 총선에서 공천 컷오프된 것도 같은 당 최고위원에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을 친다”고 말한 게 문제가 됐다. 그런 모습은 4선 의원이 되고, 최고위원, 당대표가 돼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자신이 증오한 이명박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과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정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날 그 식당에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도 정 대표였다. 정 전 의원을 향한 정 대표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당대표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달 16일에도 정 전 의원 6주기를 맞아 묘소를 찾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비난했던 사람이 정 전 의원 기일은 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챙겼다. 정 대표는 이날 “당은 달랐지만 대화가 되는 분,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해 주는 분, 그리고 매사에 솔직 담백했던 형님이 요즘 더 그립다”고 했다.

보름쯤 지나 그는 당대표가 됐다. 수락 연설에서 야당과 전쟁을 선포했다. 국힘을 겨냥해 “지금은 여야 개념이 아니다”라며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 전 의원 묘소에서 눈시울을 붉히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정 전 의원이 살아서 국힘에 있었어도 저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민주당이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변했듯 국힘도 정 전 의원이 있던 때와 지금은 다르다. 비상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여야가 모두 극단화됐다. 정 대표는 국정 운영에 ‘원팀’을 말했지만, 야당은 ‘다른(the other) 팀’이고 싸워 없애야 할 적일 뿐이다.

정 대표에게 묻고 싶다. 그래도 한 번쯤은 국힘 의원들을 정 전 의원 대하듯 할 수는 없을까. ‘다른 팀’의 누군가가 정 대표를 떠올리며 ‘당은 달랐지만 대화가 되는 분’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해 주는 분’이라고 얘기해 줄 사람이 있을까. 당대표 하는 동안 그런 인연을 하나라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