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한국 토종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6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공연 모습./NHN 링크

지난 주말 시즌 3가 공개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순위를 집계하는 모든 국가에서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사상 최고 히트작에 걸맞은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주식시장은 차가웠다.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일부 제작사 주가가 월요일 주식시장 개장 직후부터 하향 곡선을 그렸다. 20% 넘게 폭락한 것도 있었다. 주가는 과거의 성취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가 하락은 K드라마 제작사들에 던지는 “내일의 먹거리로 무엇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이자 냉정한 평가일 것이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때 K영화도 같은 질문 앞에 섰다. ‘기생충 이후’의 한국 영화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불행히도 5년째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다. 2017~2019년 한국 극장의 연평균 매출은 1조8200억원을 넘었는데 작년엔 그때의 65%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 한국 영화 흥행 성적은 더 처참하다. 지난해 두 편이었던 ’1000만 관객’ 영화가 올핸 실종됐다. 밖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시선도 차가워지고 있다. 한국 영화를 늘 주목하던 칸 영화제가 올해 한국 장편 영화를 단 한 편도 초청하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상대에 섰을 때 상상도 못 했던 추락이다.

이렇게 된 것이 혹시 ‘아카데미상의 저주’는 아닐까 생각해 봤다. 한국 영화계는 관객이 떠나는 이유를 밖에서만 찾으려 했다. 관객 감소를 코로나 탓하며 그것만 끝나면 떠났던 관객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정작 관객의 취향과 감상 메커니즘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현실은 눈감거나 못 본 척했다. 휴대전화와 단절되느니 차라리 극장 관람을 포기하겠다는 극장 기피 현상도 뚜렷해졌지만 이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극장가 주변에서 “휴대전화 마음대로 보고, 불판에 고기도 구워 먹는 극장이라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다.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그렇게 표현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한국 뮤지컬이 도약하려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세계 4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외형적으로 커졌지만 매출의 70%를 해외에서 라이선스를 주고 들여온 대형 뮤지컬이 차지한다. 창작 뮤지컬의 토대는 여전히 영세하다. 토니상을 한 번 받았다고 그런 과제가 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쩌면…’은 브로드웨이에 수출되면서 현지 관객 취향에 맞게 수정됐다. 화려한 홀로그램 이미지를 더했고 반딧불이로 가득한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원작보다 세련된 볼거리를 추가했다. 이런 브로드웨이식 연출에서 우리가 벤치마킹할 것은 없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용산 대통령실로 K컬처 각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룬 주역들을 초청했다. 그중엔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연출한 김원석 감독 등이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폭싹…’이 남미와 유럽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고 치하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폭싹…’은 비영어권에서만 1위를 했을 뿐, OTT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북미 영어권 시장에서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 정상을 차지하려면 제2, 제3의 ‘오징어 게임’이 나오고 에미상도 두 번, 세 번 받아야 한다. ‘책을 한 권만 내면 진짜 저술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낸 것에 만족하지 말고 새 책을 쓰라는 얘기다. 아카데미상과 에미상, 토니상도 다르지 않다. 세계에서 의심 없이 K컬처의 실력을 인정받으려면 한 번의 수상을 자신의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같은 상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받아야 한다. 모든 첫 수상은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