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지지자만큼 소중한 자산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 거인들은 때로 지지층을 거스르는 결단으로 대업(大業)을 이룬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그런 인물이다. 드골은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뒤 영국으로 망명해 대독(對獨) 항전을 이끈 영웅이자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이라는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진정 그가 위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을 매듭지었기 때문이다.
알제리는 프랑스가 130년 이상 지배한 식민지였다. 프랑스에서 건너간 이주민, 그 후손이 100만명에 달했다. 사하라 이남의 다른 식민지와 달리 알제리는 프랑스 본토의 일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영토로 여겨졌다. 1954년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독립 선언으로 시작된 독립전쟁은 테러와 게릴라전, 학살이 반복된 추악한 전쟁이었다. 알제리 독립에 가장 강경한 반대 세력은 군부였다. 알제리에 유화적인 플림랭 정부가 출범하자 군부가 궐기해 붕괴시키고 드골을 추대했다.
드골은 강한 프랑스 민족주의와 보수적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드골이 전혀 뜻밖의 결단을 내렸다. 알제리의 자결과 독립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동의를 얻고 1962년 알제리 독립 협정에 서명한 것이다. 군부에 확고한 권위를 갖고 있던 그였기에 군과 보수층의 반발을 무마하고 8년간의 전쟁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알제리 전쟁은 프랑스의 국력과 도덕성의 밑 빠진 독이었다. 드골은 프랑스 제국주의의 마지막 무대라 할 알제리에서 후퇴하며 프랑스를 구한 것이다. 그 스스로 “내가 프랑스에 안겨줄 최고의 공헌”이라고 했다. 키신저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층의 상식을 거스르며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닉슨이 어떤 인물인가. 매카시 상원 의원에게 동조해 반미활동조사위원회 위원으로 공산주의자 사냥을 했던 사람이다. 중국은 또 어떤 나라인가. 6·25 전쟁에서 싸운 적국이었고,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에 각종 전쟁 물자와 무기, 후방 기지를 제공한 공산 국가였다. 닉슨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기에 오히려 그가 추진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미 보수층이 의심하지 않았다.
좌파 노동당 출신이면서 ‘제3의 길’을 표방하며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등 보수적인 정책 추진으로 영국에 활력을 불어넣은 토니 블레어, ‘복지 확대’라는 민주당 기조와 달리 복지 수급 기간 제한, 수급과 취업 연계 등 복지 시스템을 개혁한 빌 클린턴도 전통적인 지지층을 거스르며 성공한 지도자들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그런 큰 승부에 나서길 기대한다. 특히 노동 문제야말로 이 대통령이 해결하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한다. 노동 문제는 한국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라고 국제 조사 기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적폐이다. 보수 정권은 노동계가 아예 백안시하기에 합리적인 소통조차 쉽지 않다. 입법 권력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정권, 특히 대선에서 양대 노총으로부터 모두 지지를 받은 이 대통령은 노동계에 ‘신뢰’라는 자산까지 갖고 있지 않은가.
주 52시간제와 노란봉투법 같은 것은 결코 노동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연봉 1억원에 가까운 일부 기득권 노동자의 목소리가 과잉 반영된 규제이다.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못해 시들어가는 청년이 수두룩하다. 노조가 약자이고 기업이 강자라는 등식도 이젠 성립하지 않는다. 제조업 각 분야에서 중국 대비 경쟁력 상실로 아우성치는 소리를 진지하게 듣는다면 기업에 족쇄를 덧채우는 규제는 없애야 한다. 이 대통령은 ‘실용’을 강조해 왔다. 임기응변의 작은 실용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큰 실용으로 대업을 이루려면 지지층과도 맞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