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이 50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윤석열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발표로 시작된 이번 사태가 유례없이 오래간다. 전공의는 수련 병원을, 의대생들은 학교를 떠났다. 결국 정부는 1년 만에 원점(2026학년도 의대 증원 0명)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의료 현장은 붕괴했다. 전공의 복귀율은 20%가 되지 않는다. 의사 시험을 통과한 올해 새내기 의사는 예년의 10분의 1 수준이다. 6년 뒤 의사 2000명을 늘리고자 의대 정원을 확대했는데, 당장 올해 새로운 의사가 2000명 넘게 줄어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상급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담당하는 전문의도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 여파가 최소 10년은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의료계는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장·차관 교체를 요구했다. 정권은 바뀌었고, 보건복지부 장·차관 교체를 앞둔 지금이 정부와 의료계가 다시 논의를 시작할 최적기다. 의정(醫政)은 갈등을 단순 ‘봉합’만 할 것이 아니라, 치료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 500일의 실패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

먼저 투명성이다.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의료 인력 수급 추계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위원회는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포함해 의료 인력 수급을 결정하는 핵심 기구다. 위원 절반 이상을 대한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의료 공급자로 구성하게 돼 있다. 정부는 위원회 세부 운영 규정에 대해 이달 말까지 의견을 모은다지만, 어떤 단체들에 위원 추천을 요청했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의료계 불신을 받는 이유다.

사소한 부분부터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답정너’식으로 위원회를 활용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부와 고위 공직자는 말에 책임지고 원칙을 지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의정 갈등 와중에 ‘의새 논란’ 등 불필요한 말들이 의사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정부는 사직 전공의들에게 의사 면허정지 처분 등을 내리겠다며 엄포를 놓다 결국 사직서를 받아줬다. 의대생 휴학에 대해서도 ‘집단 휴학 불허, 제적 등 검토’로 위협하다 끝끝내 양보했다. 일반 국민마저 정부를 ‘양치기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교칙으로 금지한 연속 휴학 등으로 의대생 8000여 명이 유급 대상, 40여 명이 제적 대상이다.

이들은 정부의 후퇴를 기대하지만, 같은 대학에서도 “의대생만 학생이냐. 왜 계속 특혜를 주느냐”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제적 의대생 빈자리를 편입생으로 메우겠다고 했는데 이것이 ‘협박용’이 아니란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료계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부 정책이 졸속이었다 해도, 의료계가 선택한 집단행동은 국민 지지를 받지 못했다. 생명을 다루는 집단이 생명을 볼모로 잡는 듯한 모습에 많은 이가 분노했다. 이젠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대안 제시에 나서야 한다. 의료 인력 수급 추계위 참여는 물론,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공공 의대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논의로 응답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인천과 전남·전북에 공공 의대를 한 곳씩 세우고, 경북에 일반 의대 한 곳을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만약 의료계가 이번에도 “공공 의대 신설 등은 현 의대 정원 내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면, 무너진 국민 신뢰를 영영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