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2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의 개헌·공동정부 연대와 김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뉴스1

민주당을 취재할 때 ‘동지’란 말을 자주 들었다. 서로 ‘김 동지’ ‘이 동지’ 하고 부르는 식이다. 군사 정권 아래서 민주화 운동 하던 시절의 습관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기자들도 좀 가까워졌다 싶으면 동지라고 불렀다. 국민의힘 쪽에선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동지 호칭을 즐겨 썼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경쟁자 이재명 후보를 이 동지라고 불렀다. 그가 동지들에게서 파문(破門)을 당했다. 정치에 입문시킨 동교동계가 가장 빨랐다. 이 전 총리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지지를 선언하자마자 김대중재단은 긴급 이사회를 열고 그를 제명했다. 거의 동시에 그를 총리로 모시던 문재인 정부 장차관 모임 ‘포럼 사의재’도 그를 상임고문에서 제명했다. 이낙연 정치의 시작과 끝이 모두 부정당했다. 파문은 공동체에서 추방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므로 비난도 무제한이다. 그가 전남지사, 당대표 할 때 측근들이 앞다퉈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이 전 총리는 2000년 민주당에 입당해 작년 새미래민주당을 만들어 나올 때까지 한 번도 탈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삼아왔다. 24년간 당을 지켰던 사람이 반나절 만에 버림받았다.

동교동이든 친문이든 민주당 입장에선 김 후보 지지를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적진에 투항한 그를 곱게 보내기도 싫었을 것이다. 그래도 평생 동지라 부르던 사람을 순식간에 호적에서 파내는 모습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과거 동교동계 한화갑·한광옥 전 의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파문까지는 안 당했다. 이번엔 왜 그랬을까? “이재명 후보가 무서워서 그랬을 것”이라고들 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 후보와 죽기 살기로 싸웠다. 이낙연과 가까웠던 사람들이 먼저 이낙연을 부인해야 이 후보에게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 터이다.

선거는 이기는 게 목표다. 자기편을 단속하고 상대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에는 달라져야 한다. 이기든 지든 선거 후 민주당의 가장 큰 과제는 국민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이 후보가 이겨도 국민 절반이 승복하지 않으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 의석수만 믿고 밀어붙이다간 다음 총선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 이 후보가 만약 진다면 포용과 화합에 인색한 이미지가 낳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걸 불식시켜야 다음 대선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통합은 필수다.

이 후보도 안다. 그래서 TV 토론에서, 유세에서, 빨강과 파랑이 섞인 넥타이와 운동화를 매고 신는다. 그는 “어떤 공동체든 대표로 선출되기까지는 한쪽을 대변하겠지만, 선출된 뒤에는 공동체가 분열하지 않고 함께 가도록 하는 것이 대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며 “대통령이 된다면 저를 지지한 사람이든 아니든, 똑같이 존중하고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겠다. 반(半)통령이 아니라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통합은 어떻게 하나. 최근 만난 민주당 인사는 “야당 때 여당에 하지 말라고 했던 일을 여당이 돼서 똑같이 하지 않는 게 시작”이라고 했다. 역지사지다. 그는 “이명박 정부 때 권재진 민정수석을 법무 장관에 임명해서, ‘비서를 바로 장관 시키느냐’고 그렇게 비난했는데, 우리도 문재인 정부가 조국 수석을 법무 장관 시키면서 결국 정권이 무너졌다”고 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집권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 후보가 말한 대로 통합을 실천하고, 집권 후 역지사지한다면 이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전 총리 예상대로 ‘괴물 독재 정권’이 탄생할지, 이 후보 말대로 ‘통합 대통령’이 탄생할지는 이 후보에게 달렸다. 이 전 총리도 이재명 동지의 말대로 되기를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