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2년 8월 파리에서 발생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위키피디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는 22일로 타계 1주기를 맞는 신경림 시인의 유고 시집이다. 수록 시를 읽다가 ‘미세먼지 뿌연 날’에 눈길이 멈췄다.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읽으며/ 증오에 찬 구호를 들으며/ 나는 우울해진다’는 시행에서 극단적인 진영 대결을 펼치는 우리 정치 현실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타계 여러 해 전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떠올랐다. 시인은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 대부분이 자신은 안 바뀌면서 다른 사람만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동시에 그 사람이 지적하는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데서 이뤄진다”고 말했다.

신경림 시인 자신도 1972년 첫 시집 ‘농무’를 냈을 때는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쪽이었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중략)/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라며 그 시절 농촌의 절망과 울분을 토했다. 그 후 평생토록 그는 부조리한 현실의 개혁을 추구한 진보적 문인이었다. 그런데 말년에 이르러 쓴 시와 세상에 남긴 말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했던 것이다.

유럽이 종교 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로 갈려 싸웠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진영 대결보다 더 지독하고 유혈이 낭자했다. 프랑스 국왕 앙리 4세는 종교를 이유로 국민이 피 흘리는 비극을 끝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정치인이었다. 신교도였던 그가 지금 우리 정치인이었다면 개혁을 빌미로 구교도를 적폐로 몰아 척결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앙리 4세의 개혁은 구교도 일소가 아닌 자신의 개종이었다. “내가 구교도로 개종할 테니 더는 하느님 믿는 사람끼리 싸우지 말자”고 했다. 그런 개혁 정신을 담아 발표한 것이 화해와 포용으로 새 프랑스를 만들자고 호소한 낭트칙령이었다.

이 땅에서 정치하는 이들이 말끝마다 올리는 게 개혁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자기는 바뀌지 않고 남만 바꾸겠다는 주장뿐이다. 그 결과, 숱한 개혁에도 서로를 향한 삿대질만 무한 반복될 뿐,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껏 이어지는 방송법 개정 논란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민주당은 공영방송 사장을 대통령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냈다. 그런데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자 태도를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송법 개정을 중단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를 공영방송 사장에 앉히며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 되겠는가”라 했다. 진보 진영 인사들조차 그 말에 어이없어했다. 공영방송 수장이 기계적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방송 개혁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단했던 방송 개혁을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재개하며 “정권에 따라 방송이 흔들리던 과거와 결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곧 있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방송 개혁은 다시 흐지부지되거나 민주당의 장악력을 높이는 쪽으로 바뀔 공산이 크다. 국민의힘도 할 말은 없다. 정권을 넘겨받기 전엔 민주당의 방송 장악을 그토록 비판하다가 막상 정권을 쥐자 “방송법 개정은 민주당 주장이었다”며 개혁 기회를 외면했다. 민주당이건 국힘이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권력을 강화하는 정치적 핑곗거리로 개혁을 소모했다. 정치가 타락하면 언어가 혼탁해진다는 사실을 우리 정치처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신경림 시인의 유고 시집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란 작품도 실려 있다. ‘생각이 다르고 말이 다른 사람들이/ 귀를 열고 마음을 열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고 했다. 지금 우리 정치에 이보다 더 절실한 말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