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사법부 독립이 요즘처럼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가 있었나.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의 무차별적인 대법원 공격은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의 원칙을 뿌리째 흔드는 수준이다.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이 후보의 첫 반응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판결” “법도 국민의 합의이고 결국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민주 국가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삼권분립의 한 축인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이 후보는 ‘국민’을 끌어들여 판결의 권위를 부정했는데, 그가 말하는 국민이 어떤 국민인지 모르겠다. 대중(大衆)의 이름으로 헌법기관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파시즘적 행태이다. 법치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다수의 뜻이 판결을 좌우하는 것은 인민재판, 홍위병 재판이지 법치가 확립된 민주국가의 재판은 아니다.
다수의 힘으로 법치를 왜곡할 때 끔찍한 사회가 된다는 건 여러 반면교사의 사례가 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과 장경태 의원은 지난 2일과 8일 각각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30명과 10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오르반 정권의 헝가리, 카친스키가 막후 독재자로 군림했던 폴란드에서 벌어졌던 일과 너무나 똑같다. 남미 좌파 독재 정권, 동구 권위주의 정권이 어떻게 사법부를 꼭두각시로 만들었는지 스터디를 하지 않았나 의심이 들 정도다.
차베스 정권은 2004년 20명이던 대법관을 32명으로 늘리고, 12명을 모두 충견(忠犬)으로 채웠다. 이후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할 때까지 대법원 판결 4만5000여 건 중 정권에 반하는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대법원이 정권의 결정을 전적으로 옹호하면서 언론과 야당을 탄압해도 아무런 견제가 없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사는 문을 닫았고 유력한 야당 후보는 출마 기회조차 막혔다. 오르반 정권도 2011년 11명이던 헌법재판관을 15명으로 늘리곤 야당 동의 없이 재판관을 임명했다. 헌재는 정부에 유리한 판결만 쏟아냈다.
민주당은 법을 개정해 이런 사법부를 만들려는가. 여기에다 대법원장과 판사 탄핵, 청문회 개최, 특검법 발의 추진 등 다양한 추가 조치를 동원해 사법부를 아예 무릎 꿇리겠다는 태세다. “사법부 법봉보다 입법부 의사봉이 훨씬 강하다는 걸 깨닫게 하겠다”는 윤호중 총괄선대본부장의 한마디에 그 의도가 담겨 있다. 이재명 후보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사법부를 믿지만 그 총구가 우리를 향하면 고쳐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독전(督戰)하고 있다.
사법부의 법봉은 이미 꺾인 모양새다. 서울고법 환송심 재판부는 15일로 지정했던 첫 재판일을, 민주당이 ‘사법 쿠데타’ 운운하며 “연기하라”고 명령하듯 요구하자 6월 18일로 연기했다. 대장동·위례·성남FC 재판도 대선 이후로 줄줄이 연기됐다. 처음부터 그랬다면 모르겠다. 대선 이후에 재판한들 민주당의 겁박에 한 번 꿇은 재판부의 판결을 국민이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대법원이 선고 기일을 잡았을 때는 일언반구 않다가 결과가 파기환송으로 나오자 대법원장을 ‘반이재명 정치 투쟁의 선봉장’이라 비난한 판사도 있다. 판결 전 그런 비판을 했으면 순수성이라도 믿었을 것이다. 무죄 판결이면 괜찮고 유죄 판결이면 정치 개입인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정파성을 드러내는 판사가 이미 적지 않다.
삼권이 분립한 민주국가에서 의사봉과 법봉, 어느 한쪽이 더 강하거나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의사봉으로 법봉을 일방적으로 난타하고, 사법부는 법봉의 위엄을 스스로 내려놓거나 더럽히고 있다. 실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