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6일 미국 버지니아주(州)의 해안 도시 뉴포트뉴스엔 종일 비가 내렸다. 그런데 한 아시아계 청년이 주택가 나무에 걸린 드론을 내리려 애쓰고 있었다. 미심쩍게 여긴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청년은 미네소타대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 대학원생인데, 방학을 이용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왜 궂은 날씨에 드론을 날렸냐”는 질문에 답을 못했고, 드론을 포기한 채 현장을 떠났다.

뉴포트뉴스는 미 해군 함대전력사령부가 있는 노퍽 해군기지 인근에 있다. 차세대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조선소도 있다. 미 해군 범죄수사국(NCIS)이 다음 날 드론을 확보해 분석에 나서자, 조선소와 미군 함정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2023년 8월, 미국 주방위군의 최대 훈련장인 미시간주 캠프 그레일링에서 자정 무렵 순찰을 돌던 미군 원사가 아시아계 남성 5명을 발견했다. 왜 군사 시설에 들어왔는지 묻자, 이들은 “우리는 언론사 소속”이라고 얼버무리며 현장을 떠났다. 사실은 이들 모두 미시간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중국 유학생들이었다. 이후 이뤄진 연방수사국(FBI)의 추적 수사에서 이들이 미군 기지·차량을 촬영한 사실이 드러났다.

평범해 보이는 유학생들이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미네소타대의 중국인 유학생은 드론 구입 다음 날 곧바로 미 해군 기지가 있는 노퍽으로 갔고, 이튿날 자정 무렵부터 군함을 만드는 조선소들을 집중 촬영했다. 그런데 미 당국이 이유를 추궁하자 그는 “밤에 사진 찍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미시간대의 중국인 교환학생들이 잠입했던 시기 캠프 그레일링에서는 대만군이 미군과 연합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 학생들은 “유성우(流星雨)를 보러 갔던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시작됐다. 지난해 6월 중국인 유학생 3명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근처에서 드론으로 미 항공모함을 촬영하다가 적발됐다. 지난해 11월 국가정보원을 드론으로 촬영한 중국인이, 지난 3월 수원 공군기지에서 전투기 사진을 찍은 중국 고등학생 2명이 적발됐다. 국정원은 이처럼 중국인이 “취미”나 “여행 기록용”이라며 민감한 시설을 무단 촬영하는 일이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11건 적발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고해상도 촬영이 가능한 군사 정찰 위성을 300기 이상 가진 중국이 왜 이러나 의아해한다. 주요 시설은 위성으로도 파악할 수 있고, 이미 공개된 항공모함이나 전투기 사진도 큰 정보는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 관광객이나 유학생이 외국 군사시설 사진을 찍다가 적발되는 사례는 몇 년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익이 없는데 그러진 않을 것이다. 국정원은 중국이 “한미 핵심 전력 정보를 획득하는 목적의 저강도 정보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 스스로 이런 일을 어떻게 다루는지 봐도 그렇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2023년 자국 군사 동호인들에게 민감 시설·장비를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면 “군사 안보에 심각한 해”가 된다고 경고했다. 외신에 따르면 2021년 중국 법원은 건조 중인 자국 항공모함을 촬영한 동호인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외국 정보기관이 사진을 보면 진행 상황이나 수준 등을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역으로 중국 정보기관도 그런 정보를 수집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문제의 중국인들을 간첩·위증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도 이처럼 관광·유학을 가장해 정보 활동을 하는 중국인들을 충분히 처벌하지 못한다고 고민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중국인들을 처벌할 법이 아예 없다. 간첩법 대상에 ‘외국’을 넣는 법 개정이 언제 될지도 모른다. 답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