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는 신장(Height)이 아니라 심장(Heart)으로 하는 것이다.” 미국 프로 농구(NBA) 스타였던 앨런 아이버슨이 했다는 말이다. 정확하게는 Height가 아니라 Size라고 했고 누군가 운율을 맞추기 위해 변형한 격언이지만 그 메시지가 주는 여운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열정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단호한 결의’,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 의지가 종종 기적을 낳는다는 것이다. 의지란 심조작성(心造作性), 마음이 만드는 성질이다.
아이버슨은 키가 183㎝였다. 그 키로 200㎝ 넘는 장신들이 즐비한 NBA 무대를 한때 좌지우지했다. 2001년 리그 MVP(최우수 선수)에 올라 지금까지도 역대 NBA MVP 중 가장 작은 선수로 남아 있다. 아이버슨과 (실력 면에선)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선수가 지금 NBA에 있다. 2001년생 일본 출신 가와무라 유키(멤피스 그리즐리스)다. 아시아 선수로 NBA 입성이란 드문 업적을 이뤄냈을 뿐 아니라 키가 아이버슨보다 10㎝ 이상 더 작은 172㎝다.
NBA에서 뛰는 450여 선수 평균 키는 198㎝. 유키는 26㎝나 작다. 유키와 같은 팀에서 뛰는 신인 동기 잭 이디가 223㎝인데 둘이 같이 서 있으면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보인다. 유키는 지금 NBA 선수들 중 물론 가장 작다. 79년 NBA 역사를 통틀어도 열한째 작은 선수다. NBA 경기장에서 유키를 보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중학생처럼 보인다.
유키는 아직 NBA를 뒤흔들 만큼 존재감을 보여주진 못했다. 이번 시즌 17경기에 나와 경기당 (평균) 3.3분밖에 못 뛰었고 1.4득점을 기록 중이다. 대개 승부가 기운 4쿼터 후반 이른바 ‘가비지 타임(garbage time)’에 주로 투입된다. 그런데 그 순간 장내 열기는 여느 수퍼스타 못지않다.
멤피스 지역 신문기자는 “그는 (NBA 수퍼 스타) 르브론 제임스처럼 높이 뛸 수도 없고, 키가 2m를 넘지도 않는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존재다. 그게 관중이 감동(동질감)을 느끼는 요소”라고 했다. 그를 통해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구나’라는 대리 만족을 얻는다는 얘기다.
유키는 한국 프로 농구(KBL)에 와도 가장 작은 키다. 그런데 그 키로 세계 최고 선수들이 경쟁하는 NBA를 넘보고 있으니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는 “아주 작은 사람이라도 큰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유키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그의 성공 비결은 사실 진부하긴 하다. 일본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면 노력과 열정, 그리고 끈기다. “훈련이 힘들어 지친 적도 있었고, 플레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재능이 없는 건가) 좌절하기도 했다. 부상으로 고민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농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농구가 싫어진 적도 없었다.”
한창 선수로서 기량이 커가는 고교 시절, 코로나 사태로 정상적인 연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안했지만 그는 “상황은 부정적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본기를 더 다지고 약점인 (엉덩이) 근육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삼았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단단한 하체 중심을 바탕으로 공을 보지 않고 손 감각만으로 드리블을 펼치며 적진을 돌파하는 그의 기술은 이때 본격 연마한 것이다.
“성공을 얻기 위해 고통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길이라 생각한다. 힘든 일을 겪는다면, 젊었을 때 그런 경험을 하는 게 긴 인생을 통해 되돌려받는 거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유키는 그렇게 꿈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 그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