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현장 노동조합 대표자 합동 기자회견'을 환자가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의료 대란’이라는 시한폭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2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대생들 역시 학교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내년 의대 증원으로 6~10년 뒤 의사 2000명이 늘어나지만, 그 전에 당장 내년부터 신규 의사 수천 명이 줄어들게 생겼다. 병원에서 올해 인턴으로 수련할 예비 전공의 3068명 중 131명(4.3%)만 등록했다. 대형병원에서 전공의 빈자리를 간신히 지키고 있는 대학교수들이 사직서를 낸 지도 오는 25일이면 한 달이다. 의대 교수들은 한 달이 지나면 사직서 효력이 발휘되고, 정신적·체력적 한계로 더이상 버티기 어렵다 호소한다. ‘의대생 → 인턴 → 레지던트 → 전문의’로 움직이는 한국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기 일보 직전이다. 4·10 총선이 끝난 지금이 정부와 정치권, 의료계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총선 직후 의사들은 “여당의 총선 참패는 사실상 국민이 의대 증원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내린 심판이며, 국민의 분노 표현”이라고 했다. 집권 여당에 대한 의사들의 비판이 결과로 나타난 총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일반 국민 중 의사를 두둔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큰 병에 걸린 적이 있다면, 현재 의료 시스템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이유를 막론하고,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난 것에 대해서는 분노가 더 커 보인다. 지역마다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며 유족들이 분노하는 사례가 하루 걸러 한 건씩 생기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제때 치료를 받았더라도 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설명하지만, 이런 사례들을 접하는 일반 시민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

사태 해결 능력이 부족한 정부에 대해서도 답답함을 넘어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모든 정책에는 플랜 A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대안으로 내세울 수 있는 플랜 B가 있어야 한다. 작은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전략을 세울 때 플랜B 를 마련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 해 국가 예산 122조(兆)원을 움직이는 보건복지부가 플랜 B 없이 배수진(背水陣)을 쳤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플랜 B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응 방식에도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총선 직전 의대 증원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기자 한 명도 부르지 않고 일방적으로 51분간 발표한 형식은 기괴했다. 대통령은 ‘방향은 맞는데 방법이 틀렸다’는 주변 사람들의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치에는 ‘행위 책임’ 이상으로 ‘설명 책임’도 중요하다. 이 설명은 길고 자세하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형식이 아니라,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에도 설명에 친절한 검사는 아니었다. 중수부 검사 시절, 대학 친구인 판사가 자신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는 이유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뒷얘기를 들었다. 영장이 기각당했다면 분노할 것이 아니라, 법원을 설득하기 위한 설명에 보다 더 큰 힘을 쏟았어야 했다. 정치인, 그것도 대통령의 자리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태가 곪아 터진 뒤 전공의 대표를 불러 만날 것이 아니라, 이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 전공의 100명을 불러 끝장토론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의료계·정부·대통령 모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지만, 의료대란의 시한폭탄이 터지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환자와 국민의 몫이다. 폭탄을 막기 위한 골든타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