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연설 소식은 추석 연휴 첫날 전해졌다. 김정은은 ‘공화국은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는 문구를 헌법에 삽입한 의미를 설명하며 “신성한 투쟁의 전취물을 헌법으로 고착시켰다”고 했다. 핵을 신성불가침 반열에 올렸다. 이어 “일단 보유한 핵은 세월이 흐르고 대(代)가 바뀌어도 영원한 전략 자산으로 보존·강화하고 어떤 경우에도 훼손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작년 최고인민회의에선 북이 공격당할 조짐만 보여도 선제 핵 타격에 나서도록 규정한 ‘공화국 핵무력법’을 제정했다. 김정은은 그 당위성을 설명하며 “백 날, 천 날, 십 년, 백 년 제재를 가해 보라.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연설 뒤 김정은은 2주에 걸쳐 한국을 겨냥한 전술핵 공격 훈련을 7차례 지휘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북은 추석 직후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3주 뒤 사거리 590㎞짜리 대남 타격용 ‘미니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올해는 핵무력 법제화를 넘어 헌법화까지 했으니 더한 도발을 할 수 있다. 추석 즈음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대남 무력시위에 나서는 패턴이 3년 연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북의 가을 도발은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을 자축하고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의미도 있다. 내세울 경제 성과가 전무하니 갈수록 군사력 과시에 기댄다. 두 달 전 북은 10월에 군사정찰 위성을 다시 쏘겠다고 예고했다. 3차 발사마저 실패하면 낭패다. 보험 성격의 무력시위도 준비할 것이다.
정찰위성보다 중요한 것은 핵실험이다. 북한은 김정은이 2021년 당대회에서 전술핵 개발을 공개 지시한 뒤 핵실험 준비에 돌입했다. 전술핵 탄두를 양산하려면 200~300㎏급 소형 핵탄두 위력을 실제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다. 기이한 것은 작년 상반기까지 무성했던 7차 핵실험 임박설이 요즘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자는 “핵실험으로 바이든 정부로부터 얻어낼 이익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미국 정치에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내년 대선 국면에 다시 핵실험 임박설이 분출할 것이란 관측이다.
외교가 일각에선 중국 요인을 거론한다. 중국이 북에 ‘핵실험 절대 불가’ 입장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는 것이다. 핵실험 임박설이 한창이던 작년 5월 방한한 류샤오밍 중국 6자회담 대표도 한국 고위 당국자들과의 만남에서 이 점을 특히 강조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 군사적 긴장 고조 우려 등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핵 안전 문제에 둔감한 북한이 중국 국경으로부터 불과 70여㎞ 떨어진 곳에서 위험천만한 핵실험을 하는 게 불안한 것이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화강암 지대지만 6차례 핵실험으로 지반이 약해졌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이후 40차례 넘는 지진이 발생하며 지반 붕괴가 심각하다. 중국은 추가 핵실험 시 방사능 유출을 비롯한 환경 재앙을 크게 우려한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그 여파가 역사·문화·민족적으로 민감한 동북 3성에 미칠 경우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내상을 입은 시진핑 리더십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번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잠시도 멈춤 없이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급속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핵실험을 전제로 한 얘기다. 시기가 문제일 뿐 결국 강행할 것이다. 7차 핵실험은 한국의 국운을 위태롭게 만들 전술핵 탄두의 양산을 뜻한다. 억제력을 갖출 때까지 핵실험을 최대한 늦추고 가능하다면 좌절시키는 것이 한국 외교의 목표여야 한다.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북 핵실험 저지가 한중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이 드문 국면이 기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