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루인데 부르는 명칭은 둘인 날이 있다. 5월 1일, 바로 오늘이다. 누구는 ‘근로자의 날’이라 하고 누구는 ‘노동절’이라 한다. 중소기업이냐 대기업이냐, 공무원이냐 아니냐 등에 따라 어떤 직장인에게는 까만 날이고 어떤 직장인에겐 빨간 날이다. ‘이날 쉬면 근로자, 출근하면 노동자’라는 뼈 있는 농담도 들린다.

근로자의 날 연휴를 앞둔 지난 28일 제주국제공항에서 관광객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뉴스1

생계 유지 활동을 일컫는 근로와 노동 사이에는 대립적 긴장감이 서려 있다. 보수 진영은 근로자의 날과 근로자를, 진보 진영은 노동절과 노동자를 선호한다. 법률 영역에서는 ‘근로계약’ ‘근로소득’처럼 근로를, 경제 영역에선 ‘노동단체’ ‘노동시장’처럼 노동을 더 널리 쓰는 경향이 있다. 두 단어는 어쩌다 사뭇 다른 두 세계로 갈라졌을까.

오해부터 바로잡자. 근로는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써온 말이다. ‘근로정신대’ 등 일제강점기의 유물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증명한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서 원문 검색을 하면 ‘勤勞(근로)’는 615회, ‘勞動(노동)’은 354회 등장한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은 노동보다 근로를 더 익숙하게 사용한 셈이다. 가령 임진왜란 후 이순신을 공신으로 봉할 때는 “왜적을 쓸어내며 7년간 열심히 근로하였다”고 적었다.

임금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경복궁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인 근정전(勤政殿)의 뜻을 새겨 보라. 부지런히 다스리는 대궐이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 “밭뙈기 하나 물려주지 못하지만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남긴다”고 썼다. 기름진 논밭 대신 평생 써도 닳지 않을 정신을 상속한 것이다.

부지런할 근(勤)은 이렇듯 조상들이 권장한 미덕이었다. 현대에는 부지런하다는 의미가 약화되거나 소실되면서, 근로는 사실상 노동과 거의 같은 뜻을 지니게 됐다. 그런데 노동계와 진보 진영은 ‘부지런히 일한다’는 원뜻이 사용자(기업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이유로 근로라는 말을 기피한다. 노동이 더 가치 중립적이라며 근로를 걷어차기도 한다.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 김한샘 교수 연구팀은 성향이 다른 신문 A와 B, 소셜미디어(SNS)를 대상으로 지난 6개월간 ‘근로’와 ‘노동’이라는 단어가 어떤 빈도로 나타나는지 조사했다. 진보 성향 신문 A는 ‘노동(2086회)’을 ‘근로(202회)’보다 10배 더 많이 사용했다. 보수 성향 신문 B에서도 ‘노동(1221회)’이 ‘근로(360회)’를 앞질렀지만 신문 A와 견주면 그 격차는 크지 않았다. 거꾸로 SNS에서는 ‘근로(9474회)’가 ‘노동(5151회)’보다 더 자주 등장했다.

공적인 기술을 하는 신문과 개인이 감정을 드러내는 SNS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국 사회에서 ‘근로’와 ‘노동’의 어긋난 지형도를 볼 수 있다. 말뭉치를 연구해온 김한샘 교수는 “자신이 하는 일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단어 선택으로 가늠할 수 있다”면서도 “사회에 의해 언어가 바뀔 수 있고 언어에 의해 사회가 바뀌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9주 연속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달릴 만큼 사랑받는 ‘세이노의 가르침’은 가난한 자들의 가장 큰 특징으로 ‘돈 받은 것 이상으로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를 꼽았다. 일을 더 헌신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는 점은 까맣게 모른다는 뜻이다. 부지런할 근(勤)은 억울하다. 근로를 향해 누가 왜 돌을 던지나. 오늘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출퇴근을 반복하며 땀을 흘리고 세금을 내는 당신을 응원한다.

김한샘 연세대 교수는 "근(勤)에는 중립적인 '일하다'의 의미가 들어 있고, 노(勞)에도 '애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근로는 육체와 정신의 일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적 의미가 강하고, 노동은 ‘노동을 하다’처럼 구체적인 행위의 의미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