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0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꽃다발을 선물 받고 있다./로이터

윈스턴 처칠에 대해 꼭 해답을 찾고 싶었던 궁금증이 있었다. 그가 2차 대전 발발 훨씬 전부터 히틀러의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어떤 계기로 독재자 실체를 간파한 것일까.

1932년 여름 그는 조상인 제1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 관련 책을 쓰려고 독일 뮌헨에 갔다. 말버러 공은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연전연승, 유럽 패자(霸者)를 꿈꿨던 프랑스 루이 14세 야망을 무너뜨린 인물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나치 당원과 환호하는 시민을 보며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서 광기(狂氣)를 봤다. 이때가 ‘유레카 모멘트’, 즉 깨달음의 순간이 됐다. 그해 11월 처칠은 의회 연설을 했다. “거리에 나온 게르만족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며 찾는 것은 바로 무기입니다.” 그러면서 무기를 손에 넣는 순간 독일은 과거 영토를 되찾으려 할 것이고 프랑스와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이 일제히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그의 예측대로 굴러갔다.

처칠의 안목은 전후에 또 빛을 발했다. 이번엔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 경고등을 켰다. 1945년 5월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전보에서 ‘철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있다고 했다. 이듬해 그가 미국 미주리주 풀턴에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철의 장막 연설’ 1년 전이었다. 소련은 물론 미국에서도 “처칠은 전쟁광”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성범죄 영역에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란 말이 있다. 이를 본떠 독재의 본성과 위험을 감별하는 안목에 ‘독재 인지 감수성’이란 말을 붙인다면, 그 최고봉은 처칠일 것이다. 그의 탁월한 통찰력과 결연한 투쟁 덕에 자유민주주의는 승리했고 인류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사람이든 국가든 그 실체를 알아채긴 쉽지 않다. 알아도 맞서 싸우기 어려울 수 있다. 상대가 돈이 많거나 자원이 풍부하거나 군사력이 막강한 경우엔 더욱 그렇다. ‘무티(Mutti·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전 세계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60여 차례 만났지만 그의 포악함과 야심을 포착하지 못했다. 퇴임 때가 돼서야 “푸틴은 오직 권력만 중요한 사람”이라며 회한에 찬 말을 했다.

재임 중 메르켈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2008년 4월)했고, 독일과 유럽의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를 크게 높였다. 러시아에 약점을 보였고,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2008년 8월), 크림반도 합병(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침략이 발생했고, 세계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슈피겔은 “(메르켈은) 위기의 성공적 관리자에서 이젠 ‘위기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독재국가인 그 나라가 후진국이라도 얕볼 수 없다. IT 발달과 세계화 덕에 언제든 핵 같은 무기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이 도발해도 종국엔 물리치겠지만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극악해질수록 독재 인지 안목과 그들 횡포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는 중요하다. 재앙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지도자뿐 아니라 국민의 ‘독재 인지 감수성’도 절실하다. 같은 민족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전쟁을 하자는 건가”라는 겁박 때문에 세계 최악의 독재자에 대한 경계심이 약해지기도 했고, 핵·미사일 개발 폭주도 막지 못했다. 우리 주변엔 여전히 독재자를 추종하는 세력이 적지 않고, 그들 지령을 받는 간첩단이 노동계 등 곳곳에서 암약한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식의 대국민 사기극이 재현되지 않게 하고, 그런 주장을 하는 세력이 다시 활개 치지 않게 하려면 독재를 보는 우리의 안목이 더욱 견고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