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검찰 조사 내내 진술을 거부했다. 대장동 일당에게 불법 대선 자금을 받았다는 그의 혐의와 관련해선 돈을 댄 사람과 전달자 모두 돈을 줬다고 시인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해명하면 될 텐데 김 부원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뻔하다. 검찰 조사에서 자기 허점 노출하지 않고, 수사 내용 파악한 뒤 법정에서 검찰의 허점을 파고들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런 전례를 만든 사람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다. 뇌물,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두 차례 재판을 받았던 그는 검찰에선 진술을 거부했고 법정에서도 검찰 신문엔 함구했다. 그 덕분인지 뇌물 사건에선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불법정치자금 사건에선 받은 돈 중 수표 1억원이 여동생 전세금으로 쓰인 증거가 드러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국 전 법무장관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얼마 전엔 ‘n번방 사건’ 주범이 ‘계곡 살인 사건’으로 수감된 범인들에게 “진술을 거부하라”는 황당한 편지를 보낸 일도 있었다. 과거엔 드물었던 진술 거부가 이젠 무슨 유행이 된 듯하다.
헌법상 권리인 진술 거부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수사와 재판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뇌물 등 부패 사건에선 더욱 그렇다. 과학수사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자금 세탁 등 범죄 수법은 지능화되고 있고, 5만원권 등장 이후 검은돈은 현금으로 오가 계좌 추적도 효용성을 잃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도 ‘사법협조자 형벌 감면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본다. 피의자가 타인의 더 큰 범죄를 진술해 수사에 협력하면 형벌을 낮춰주거나 불기소하는 제도다. 일본은 ‘협의·합의제도’라는 이름으로 2019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했다. 범죄는 지능화하는데 증거 수집은 어려워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주는 미국식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약간 성격이 다르다. 프랑스·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도 변형된 형태로 플리바게닝을 운용하고 있다.
이 제도엔 “정의 관념에 배치된다”는 비판이 늘 따라붙는다. “형벌은 협상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검찰의 남용 우려도 있다. 법무부가 2011년 이와 비슷한 ‘내부증언자 면책제도’를 도입하는 법 개정안을 냈다가 무산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이상적인 건 범죄 관련자들을 다 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진술 거부나 막무가내식 부인(否認)에 막혀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장동 사건’도 그중 하나다. 그렇다면 공범 일부를 선처하더라도 자백을 끌어내 이른바 ‘몸통’을 처벌하는 게 사법 정의에 더 부합하는 것 아닌가. 관련자들의 뒤늦은 자백으로 이제야 실체가 드러나는 대장동 사건도 이 제도가 있었다면 훨씬 빨리 진실 규명이 이뤄졌을지 모른다.
지금도 검찰에선 공범의 범행을 증언하면 구형량을 줄여주거나 불구속 처분하는 식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제도화가 안 돼 있어 진술의 증거 능력 등이 논란이 될 때가 많다. 그럴 바엔 차라리 법에 근거를 명시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부패·테러·마약 등으로 대상 범죄를 국한하고, 변호인 동의를 받아 합의한 뒤 판사 앞에서 허가받게 하는 절차를 두면 검찰의 남용 우려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형량 감경에 제한을 두고, 거짓 자백은 가중처벌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검찰권을 키우자는 게 아니라 거악 척결을 위한 ‘한국형 플리바게닝’을 논의해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