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회의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뉴시스

2020년 12월 30일,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2020년 10대 성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세계 표준이 된 K방역, 위기에 강한 경제, 총선 압승, 권력기관 개혁’ 등 10항목이다. 그는 “경제와 방역에서 성공한 사실상 유일한 나라” “역대 정권이 20년 걸릴 일을 우리 정부가 다 했다”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흐뭇했을 것이다. 그해 총선에서 압승했고 ‘야당복’이라는 말처럼 견제 세력은 지리멸렬했다. ‘20년 집권론’이 나올 법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민심의 뇌관이던 부동산,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갈등, 서해 공무원 총격 사건은 없었다. 노 실장은 “잘못한 것이야 야당과 언론이 도배를 하지 않느냐”며 “대통령은 인터넷 댓글까지 다 본다”고 했다. 이렇게 민심을 취사선택한 권력은 1년 3개월 뒤 정권을 잃었다. 180석으로 가득 채워졌던 권력의 술잔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권력 내부에서 부동산과 대북 정책, 권력의 오만함에 경고등을 켰다면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쓴소리를 좋아하는 권력자는 없다. 이 때문에 참모들은 대통령이 기뻐할 성과 홍보만 궁리할 뿐 실패를 연구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보좌했던 정치인들에게 왜 쓴소리를 못 했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당신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으냐”는 답이 돌아온다. 역사는 쓴소리하다 사약(賜藥)을 받는 신하를 충신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진정 유능한 신하는 옥쇄(玉碎)하는 대신 왕의 마음을 움직인다. 현대에는 쓴소리니 충신 같은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과 참모가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레드팀(red team)’과 ‘실패 연구팀’이다.

레드팀은 조직 내에 두는 ‘가상 적군’이다. 적군의 눈으로 우리 약점을 짚어내 강한 아군을 만든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물론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들은 레드팀을 뒀다. 실패 연구팀은 실패 책임을 묻기보다 실패 원인을 분석해 같은 오류를 예방한다. 레드팀과 실패 연구팀이 성공하려면 리더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용산에 레드팀과 실패 연구팀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몸담았던 검찰은 ‘검사 동일체’라는 독특한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단일성, 효율성은 있지만 다양성, 유연성이 부족하다. 여기에 대통령의 ‘화끈한’ 스타일 때문에 대선 과정에서 레드팀 역할을 했던 인사들은 마음고생이 컸다고 한다.

물론 이준석 대표와 겪은 갈등, 김건희 여사 사과 문제에서 보듯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레드팀의 조언을 수용해 위기를 헤쳐왔다. 시간이 걸리고 우회로를 거칠지언정 독불장군은 아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지금 대통령실 참모들은 불같은 윤 대통령 스타일에 낯설어 레드팀 역할을 주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을 잘 아는 레드팀이었던 권성동 원내대표, 권영세 장관, 장제원 의원은 정당과 부처에 있다. 지금의 용산 핵심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아직 낯설다.

교육부,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 실패 이후에도 같은 오류가 난 것은 실패 연구팀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 편중 인사, 김건희 여사 보좌에 혼선이 드러난 것도 레드팀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사약을 각오하는 충신을 기대하는 건 구식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레드팀과 실패 연구팀 설치를 지시하고 지지해주면 된다. 그러면 연말 대통령의 책상에는 2022년 성과 보고서와 실패 연구 보고서가 함께 올라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