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공수처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인권’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 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인권 친화적인 수사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했다. 같은 달 취임식에서도 “인권 친화적인 국가기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친정권 성향 검사인 이성윤 검사장이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조사받으러 갈 때 공수처장 관용차로 모신 ‘황제 조사’에 대해서도 “인권 친화적 수사 기구를 표방하고 있어 억울함이 있다면 들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과거 검찰과 경찰의 인권침해 사례를 감안한다면 공수처 책임자가 인권 옹호를 거듭 다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문제는 김 처장이 말하는 인권 원칙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 공수처는 손준성 검사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로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하자 그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구속 영장을 청구하더니 역시 기각당했다. 혐의 증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더라도 발부할 수 있는 체포 영장이 기각됐는데 그보다 강한 증거를 요구하는 구속 영장을 보강 수사 없이 곧바로 청구하는 것 자체가 ‘과잉 수사’다. 게다가 구속 영장을 청구한 사실을 손 검사 측에게 숨기다가 영장실질심사 전날 오후에야 알려줬다고 한다. 피의자에게 방어를 준비할 시간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민변 회장 출신인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법조인으로서 찬성할 만한, 적절하게 진행된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사실이라면 인권침해 여지가 정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서 공수처가 놓친 것은 인권뿐 아니다. 수사기관으로서 본질적 임무인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의지와 역량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법원은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 영장을 기각하면서 “수사 진행 경과 등을 종합하면 구속의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범죄 혐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자료를 내놓지 못한 ‘부실 수사’라는 것이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도망가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도 했지만 법원은 “그렇게 보기에는 어렵다”고 했다. 공수처 주장이 모두 근거 없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렇게 판단한 이유를 수긍할 만하다. 공수처는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조차 분명하게 밝히지 못했다. 손 검사의 공범이라며 ‘상급 검찰 간부들’을 지목하면서도 그들의 소속 부서나 직급조차 내놓지 못했다. 그냥 ‘성명 불상’이라고 했다. 손 검사의 지시로 범행에 가담했다는 ‘검찰 공무원’에 대해서도 역시 ‘성명 불상’이라고만 했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까지 처벌하겠다며 영장을 내놓으라고 한 셈이다. 손 검사 영장실질심사에 공수처 2인자인 여운국 차장이 직접 나섰는데도 손 검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시기 그의 상관이던 대검 차장 이름까지 틀렸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영장을 법원이 어떻게 발부할 수 있겠나.
공수처는 ‘살아 있는 권력’의 범죄를 척결하라고 만든 수사기관이다. 현직 대통령, 장관, 법관, 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부패와 비리를 잡아내 국민의 이익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가 출범 10개월이 다 되도록 이런 범죄를 ‘인지 수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검찰이나 감사원에서 넘어온 정권 불법 사건은 뭉개고 야당 대선 주자 수사 관련 사건에는 발 빠르게 움직인다. 이런 공수처를 국민 세금으로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