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대, 다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장면을 보면서 함께 함성 지르고, 탄식 흘린 그 17일간의 집단행동만큼은 흉포한 코로나 바이러스도 어찌하지 못했다. 올림픽이 코로나와의 힘든 싸움에 지친 인류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237명은 코로나로 대회가 1년 연기되는 바람에 4년이 아니라 5년이란 긴 시간을 견디면서 청춘을 쏟아부었다. “K방역 때문에 더욱 부진했다”라는 말까지 나올 만큼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의 틀에 갇혀 훈련량이 절대 부족했고, 국내 대회가 모조리 취소되는 바람에 경기 감각 유지에도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음을 알기에 그들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 한국은 도쿄에서 금 6·은 4·동 10개를 목에 걸었다.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대한민국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한국 스포츠가 타임머신을 타고 45년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이 나왔다.
이젠 성적 지상주의 대신 개인의 성취, 엘리트 체육보다는 모든 국민이 주인공이 되는 생활 체육에 더 비중을 둬야 하니 굳이 메달 수나 색깔에 연연하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뒤엔 보통 ‘한국도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니’란 생각이 깔려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하계 올림픽에서 항상 국가별 메달 1⋅2위를 다투는 나라는 수퍼 파워 미국과 중국이다. 주요 경제 선진국을 일컫는 G-7 중 10위권에 들어있지 않은 유일한 나라는 11위에 오른 캐나다뿐이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엘리트 체육을 국가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메달 레이스 상위권에 위치한 대부분 나라들이 스포츠 클럽과 학원 스포츠 등을 근간으로 한 탄탄한 저변, 스포츠 과학과 훈련에 대한 국가적 지원, 그리고 기업들의 전폭적인 투자라는 삼박자가 어우러지면서 엘리트와 생활 체육 두 부문 모두 성과를 내는 선순환을 이뤄내고 있다. 말 그대로 ‘체력은 국력’이다.
한국 엘리트 체육이 언젠가는 국제 경쟁력 약화라는 세찬 파도와 마주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점점 줄어드는데, 2016년 생활 체육과 통합되면서 엘리트 체육의 구심이 흔들린 지 오래다. 각종 사건 사고로 부정적인 시선까지 받고 있기에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을 말 없이 가슴에 품고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양궁이 절대 강자 자리를 지키고, 펜싱이나 사격, 체조 같은 비인기 종목이 기대 이상 활약한 것은 국가나 시스템이 아니라 기업의 열성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양궁 단체전 준결승에서 17세 궁사 김제덕이 쏜 슛오프 10점짜리 화살엔 현대차의 미래 먹거리 기술이 실려 2.4㎝ 차이 승리를 엮어냈고, 세계 최강 남자 펜싱 사브르 선수들의 칼 끝엔 SK의 지속적인 지원 결실이 맺혀있다.
한국 스포츠가 갈 길은 사실 정해져 있다. 생활 체육에만 관심을 두다 국가의 자존심과 국민의 사기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다시 엘리트 체육 부활에 나선 영국과 일본의 전철(前轍)만 밟지 않으면 된다. 아무리 메달이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계속된 패배(그게 한·일전이라고 생각해보라)에 ‘괜찮다’고 웃어 넘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은 유난히 4위를 많이 했다. 간발의 차이로 시상대에 서지 못한 선수들이 “충분히 잘했다” “축제를 즐기고 싶다”며 눈물보다는 웃음을 보였다. 흐뭇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국력’이 조금만 더 보태졌다면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더욱 풍성한 결실을 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