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 8일 국무총리 앞에서 마치 선생님으로부터 야단을 맞는 학생인 양 경직된 자세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였을 때, ‘이 수사는 물 건너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 폭로로 시작된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는 신도시나 산업단지 개발 계획의 내부 정보에 접근권이 있는 사람이, 계획이 발표되기 전 그 정보를 활용해 땅 투기를 했는지 규명하는 게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선 개발 계획을 기안하고 확정하기까지 결재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 그들과 관련 정보를 공유했던 사람들을 신속히 조사하는 것이 기본이다. 고위직에 있을수록 개발 계획 결정권과 내부 정보 접근권도 크다. 국토부는 실무 총괄 부처이고 총리실과 청와대는 보고 라인의 정점에 있는 정부 조직이다. 당연히 총리실도 잠재적인 수사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해당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사람이 총리가 부르자 바로 달려가 그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앉았다. ‘성역 없는 수사’ ‘권력형 비리 엄단’이라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의 숱한 공언(公言)은 본부장의 그 사진 한 장으로 날아가 버렸다.
국수본은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으로 탄생한 조직이다. 6개 범죄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의 수사 착수 및 종결권을 확보한 경찰의 수사를 총괄한다. 수사 독립성을 위해 경찰청장의 지휘도 받지 않는다. 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의 장(長)에게서 독립성을 지켜내겠다는 최소한의 강단과 결기를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성역 없는 수사’ ‘권력 앞에 위축되지 않는 수사’를 할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국수본이 770명 매머드급 수사팀을 구성한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지금까지 수사는 언론이 이미 의혹을 제기했거나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람들 언저리만 훑고 있다. 국토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참여연대가 투기 의혹을 폭로하고 보름 뒤에야 이뤄졌다. 그것도 전날 여야가 특검에 합의하자 뒤늦게 수사 의지가 있는 양 압수수색에 들어간 것이다. 국토부 내에서 투기와 관련한 범죄 혐의가 실제로 있었다면 보름 동안 증거인멸 작업이 없었을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출범 이후 첫 조사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의혹에 대한 수사 무마 혐의를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대상으로 했다. 그 사실을 공개한 공수처장의 지난 16일 국회 답변은 앞으로의 공수처를 짐작하게 했다. 김도읍 의원이 ‘이 지검장을 만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면담 신청이 들어와 면담 겸 기초 조사를 했다”고 답했다. 수사 기관의 피의자 조사가 ‘면담 겸’이었다고 하니 그 조사가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진술 조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가 없도록 만들었다. 그래놓고는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수사 부분만 이첩한 것이고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런 공수처의 권력 수사를 믿을 수 있겠는가. 검찰을 권력 수사에서 배제시키고 만든 공수처와 국수본이 모두 이 모양이다.
국가 기능의 원형은 국방, 형사·사법, 조세가 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권은 그 엄중한 사법 체계를 뜯어고치고 나서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들고나왔다. 정파(政派)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근간을 훼손하는 시도에 거리낌이 없다. 검찰이 청와대로 향하는 월성 원전 수사를 계속 진행한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러니 권력 수사의 씨가 말라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는)’ 세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