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腦)는 독재자’라고 뇌과학은 설명한다. 특정 이념에 사로잡힌 뇌는 팩트와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에 들어맞는 정보만 받아들인다. 꼭 알아야 하지만 불편한 진실에는 귀를 막는다. 이런 증세는 전염된다.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우리만 옳다’는 확신을 키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입을 틀어막거나 밖으로 몰아내버린다. 조직이 속부터 썩어도 경고음조차 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위기는 뇌에서 시작한다’고 뇌과학은 경고한다.
요즘 문재인 정권은 권력의 부패를 막아야 할 사정(司正) 기관에 ‘우리 편’만 남기고 있다. 오랜 동지라도 입바른 소리를 하면 싸늘하게 내친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인사를 놓고 법무부장관과 충돌했다. 민정수석은 정권 불법에 대한 수사를 뭉개고 검찰총장 몰아내기에 앞장선 친정권 검사들이 영전·유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법무장관이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권에 맞선 검찰총장 편을 들지 말라는 뜻이다. 대통령은 장관이 올린 인사안에 결재하고 민정수석이 낸 사표는 수리했다. 노무현 청와대, 지난 대선 캠프에서 대통령과 함께 일했고 이 정권에서 국정원 기조실장, 민정수석에 잇따라 발탁된 ‘우리 편’도 눈 밖에 나는 순간 ‘공개 파문’ 당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우리 편’을 가리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정권 호위와 선거 승리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우리 편’ 여부가 뒤집힌다. 정권은 검찰을 사냥개로 동원한 이른바 ‘적폐 청산’을 선거에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었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기소한 검사를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 대통령은 “우리 총장님”이라고 했다. “청와대·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달라”고도 했다. 그 검찰총장이 조국 전 장관 일가의 파렴치 범죄를 수사하자 대통령 태도가 돌변했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중요하다”며 차갑게 대했다. 대통령 본인의 말 한마디로 시작한 울산시장 선거 공작,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등으로 수사가 번지자 검찰총장 찍어내기 공작이 이뤄졌다. 네 차례 인사 학살, 세 차례 지휘권 발동, 직무 정지가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징계 의결서에 서명했지만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위법 감찰과 엉터리 징계였다. 마지막으로 정권은 검찰 수사권을 모두 박탈하는 입법을 추진하며 전체 검사들을 겁박하는 작전을 폈다. 검찰총장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던졌다.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은 권력의 자정(自淨) 장치다. 대통령이 “괜찮다”고 해도 “문제 있다”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정 기관이 모두 ‘우리 편’으로 채워진 정권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신임 민정수석은 민변 부회장, 노무현 청와대 법무비서관, 문재인 정부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낸 정권 편이다. 법무장관 역시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 차기 검찰총장에도 정권의 충견을 앉힐 것이다.
작년 뇌물·횡령·배임 등 중대 부패 수사가 저조했다고 법무부가 밝혔다. 정권이 자신의 불법을 덮으려고 검찰을 찍어 누르면서 국가의 반부패 역량이 위축된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도 수사기관이 적발한 게 아니라 제보로 드러났다. 투기 수사 전문가인 검찰은 수사권을 빼앗겨 손발이 묶였다. 부실 기업 최고경영자는 실패가 폭로되는 게 두려워 분식 회계를 한다고 뇌과학은 풀이한다. 부정과 비리가 탄로 날까 공포에 떠는 정권의 ‘권력형 분식 회계’는 사라져야 한다. 타조가 머리만 숨긴다고 몸 전체를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