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을 전시한다. 서울 성북구에서 살았던 문인들을 위해 성북구립미술관이 6회째 마련한 헌정전(展)이다. 김훈은 피란 후 서울로 돌아와 돈암동 성북동 동소문동에서 살았다. 홍수 때면 재래식 변소가 역류해 안암천에 똥덩어리 흘러가는 풍경을 보았고, 목욕탕 폐수로 빨래하는 산동네 아낙들을 보며 국민학교에 다녔다. 한양도성 밑 성곽을 따라 늘어선 판자촌을 구청 직원들이 때려부수는 살풍경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과 공포에 휩싸였다고 했다. 권력과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성, ‘비뚜루’ 쓴 모자, 불만 가득한 눈빛만큼이나 시대와 불화했던 성정이 이때 싹텄다.

성북문화재단이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 분관 '성북예술창작터'에서 3월 27일까지 여는 김훈 특별전 '여기에서 나는 산다'. 불에 탄 나무로 구성한 정현의 조각과 벽면에 걸린 박광수의 회화가 보인다.

‘칼의 노래’ ‘연필로 쓰기’ 등 김훈 저술이 즐비한 전시장 벽면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일체의 깃발을 혐오하고, 연대란 명분으로 무리 짓기를 일삼는 자들을 경멸하는 그가 유일하게 ‘말하는’ 분야가 산업재해다. 일용직 건설노동자, 배달 기사 등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돈 몇 푼 때문에 비참하게 스러지는 걸 막아보려고 생명안전시민넷이라는 모임에 이름도 올렸다. 이번 전시 인터뷰에서도 강변한다. “산업현장에서 매일 평균 7명이 죽는다. 깔려서, 떨어져서, 폭발해서…. 팔다리가 부러져 생업을 잃는 사람은 매년 1만명이다. 그 원인과 해법을 우리는 알고 있다. 수십 년간 토론회를 열었고, 특집 기사를 썼고,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했다. 이 문제로 박사학위 논문 쓴 사람이 수십 명이다. 그런데도 안 한다. 인간성의 퇴행, 야만의 세상이 된 것이다.”

반면 현실정치 혹은 시국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당파의 나팔만 악악거리고, 가짜뉴스가 사실을 이기는 몽매의 시대에 허공에서 부딪쳐 먼지로 부스러지는 말들”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다만 언젠가 밥자리에서 구부정히 앉아 개탄하는 모습은 보았다. “내가 칠십이 넘었는데, 이런 나라가 올 줄은 몰랐다. 나라가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이 됐다. 교양이고 이성이고 없다. 어른이고 지도자도 없다. 가령 노사의 갈등, 그건 이해할 수 있다. 임금을 더 달라, 근로시간을 줄여라 조정할 수 있으니. 근데 이건(조국 사태) 아니다. 이념 갈등도, 계급 갈등도 아니다. 그냥 당파다. 친문, 반문. KBS가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에 헬기를 띄웠다지. 다들 미쳤다. 미치광이의 시대다.”

네 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김훈의 문학 세계를 재구성한 '여기에서 나는 산다' 展. 김원진의 설치작품이다.

김훈이 유일하게 탄복하는 ‘말’은 시골 노인들의 것이다.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어떤 전략도 없는 그 말들은 삶에서 겉돌지 않는다. 거대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인간의 진실이 들어 있다.” ‘몸땡이살 보타지게 일만 하고 살다’ 칠순에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의 시(詩), 삶의 지혜이고 넉살이자 관용인 그들의 언어에 경의를 표한다.

일체의 원고 청탁을 거절하는 그가 흔쾌히 글을 준 것도, 표준어·외래어에 밀려 박멸돼가는 지역어, 노년 세대의 입에 아직 남아있는 ‘모국어의 별들’을 되살려내자는 ‘말모이 운동’이었다. 이번 주 출간되는 ‘말모이,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에 김훈은 썼다. “말은 나의 것이고, 너의 것이고, 너와 나 사이를 건너가서 여러 사람의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는 ‘살기’이고, ‘함께 살기’이다.”

말이 살면, 혼(魂)도 산다. 걸핏하면 ‘국민’을 앞세워 공갈 협박하는 정치인들, 저주와 선동의 말을 일삼는 완장들, 허깨비말만 늘어놓는 지식인들을 향해 그는 외친다. 말들아 모여라. 생명을 살리는 말들이여 모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