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졸업을 앞둔 1980년대 초반, 친구 권유로 주한미군방송을 통해 미식축구를 처음 접했다. 덩치가 산(山)만 한 사내들이 들소처럼 거센 입김을 뿜어내며 육탄전을 벌이는 매력에 푹 빠졌다. 당시 처음 접한 경기 홈팀이 이후 ‘평생 팀’이 됐는데, 그게 댈러스 카우보이스다.
카우보이스는 1970년대 두 차례 우승하면서 최고 명문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필자가 새벽잠 설쳐가면서 응원하던 1980년대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긴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쓴 감독 톰 랜드리(1990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의 실망감 어린 표정이 늘 시즌의 마지막 모습을 장식했다. 그랬던 카우보이스가 1990년대 들어 세 차례나 수퍼볼 챔피언에 올랐다. 트로이 에이크먼-에밋 스미스-마이클 어빈 삼각편대를 앞세운 공격력은 당대 최강이었다.
카우보이스에 우승 DNA를 심은 사람이 바로 1989년 구단을 사들인 뒤 지금까지 31년째 구단주로 있는 제리 존스(78)이다. 아칸소대학 시절 수비수로 이름을 떨치며 내셔널챔피언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존스는 대학 졸업 후 석유 탐사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1989년 당시 1억4000만달러를 내고 카우보이스를 사들였고, 공격적인 투자로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카우보이스는 1995년 통산 다섯 번째 우승 이후 지난해까지 25년 동안 무관(無冠)이다. 올해도 플레이오프가 가물가물하다. 1994년 NFL이 팀 샐러리캡(총 연봉 상한) 제도를 도입하면서 존스의 무차별 베팅 전략이 벽에 부딪혔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처럼 샐러리캡 시대 맞춤 전략을 펼쳐 ‘왕조’에 오른 팀도 있지만 카우보이스는 그렇지 못했다. 구단주의 절대권력이 오히려 장애물이 됐다. 존스의 명함에는 구단주 외에도 사장과 단장 직함이 함께 찍혀 있다. 자기보다 미식축구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도취에 빠졌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1인3역’으로 무소불위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데 그치지 않고, 구단 요직에 자식들을 비롯한 자기 사람들을 앉혔다. 전문가의 고언(苦言)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일관성 없는 인사(人事)로 팬들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구단주가 되자마자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던 랜드리 감독을 곧바로 해고한 다음 자신의 대학 동기 친구를 사령탑에 앉히더니, 그 감독이 자신보다 인기를 더 많이 받자 그 역시 우승 직후 결별을 선언했다. 반면 자기 맘에 든다는 이유로 능력에 한계를 드러낸 감독에겐 10년 동안이나 팀 지휘봉을 맡겨 우승할 수 있는 기회마저 저버렸다. ‘예스맨’만 가득 찬 조직에서 성과가 나올 리 없다. 카우보이스의 구단 가치는 2016~2019년 4년 연속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의해 전 세계 프로 구단 중 1위에 오를 정도로 높지만, 그걸로 팬들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상당수 팬은 이미 그에게 등 돌린 지 오래다. 일부 팬은 몇 년 전부터 그를 구단주에서 퇴진시키자는 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국내에선 구단주가 발벗고 나설 일이 별로 없다. 스포츠가 독자적인 비즈니스로 자리 잡지 못한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구단주가 열정을 갖고 직접 뛰어들면 그만큼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올해 국내 프로야구에선 김택진 NC 다이노스 구단주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반대로 리더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앞세워 구단을 자기 노리개 삼듯 하거나, 주위의 충언(忠言)과 쓴소리에 눈과 귀를 닫으면, 카우보이스처럼 일류이던 팀이 삼류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나라 운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