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의 추억이 있다. 새 아파트로 이사 간 친구의 초대.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문패가 있었다. 금박으로 테까지 두른 친구 부친의 함자(銜字).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흔적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때는 단독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에도 문패 붙인 집이 있었다. 마침내 집 한 채를 장만했다는 가장의 자부, 나도 중산층에 진입했다는 뿌듯함.
‘아파트 게임’을 쓴 동양대 박해천 교수는 이런 인용을 한 적이 있다. 무려 3000건 넘는 동시다발적 노사 분규로 기억되는 1987년 여름의 소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정주영 회장은 비서에게 울산 현대중공업의 무주택자 비율이 얼마냐고 물었다. 조사 결과는 전체 1만6000명 중 8000명. 보고를 들은 ‘왕 회장’은 낡은 기존 연립주택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원용 고층 아파트를 짓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고 한다. “이젠 근로자들이 집값 떨어질까 봐 데모 안 할 거야.” 결과는? 1995년 이후 19년 연속 무파업. ‘울산의 기적’이었다.
중산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통념이 있다. 최소 집 한 채를 갖는다는 것. 내가 그래도 집 한 채는 가진 사람이라는 것. 앞에서 언급한 울산의 아버지들은 이제 더 이상 ‘공고 출신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80년대 피 끓는 청년의 기억을 뒤로한 채, 자식 교육과 퇴직 이후를 근심하는 2000년대의 ‘중산층 아버지’가 된 것이다.
한국인에게 아파트가 단순한 집 한 채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세대의 생애 주기를 떠올려보자. 신도시 개발로 아파트 건설의 팡파르가 울리면 신혼부부는 청약을 하고 내 집 한 채를 마련한다.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르고, 중장년에 이른 부모는 고민을 시작한다. 안 먹고 안 입어 마련한 집 한 채는 내 평생의 프라이드였지만, 정작 유복하게 자란 자식들은 평생 월급을 모아도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없는 현실. 내가 남긴 집 한 채에 의존해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 내리막 세상, 과장이 아니라 증여와 노후 보장은 ‘밀당'이나 거래 대상이 된다. 박 교수는 이를 생애 주기를 관통하는 K복지 시스템이라고 비유했다. 그런데 이 정권에 이르러 이 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13평 4인 가족’의 대통령도, ‘호텔 전세’ 여당 대표도, ‘빵투와네트’ 국토부 장관도 모두 시작은 선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꼬투리 잡는다고 억울해하는 이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국민의 분노는 단순히 표현 때문이 아니라는 것. 사실은 실언 혹은 망언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현 집권 엘리트의 공통된 내로남불에 대한 화(火)다. 자신들은 담 너머에 성을 쌓고 살면서, 국민에게는 임대주택이 좋은 거라고 세뇌하지 않느냐는 것. 강남에 살면서 “모두가 강남에서 살 필요는 없다”고 말했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신축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 환상 버리라”고 말했던 여당 미래주거추진단장, 딸은 의전원 보내면서 “붕어·개구리·가재로도 행복한 세상”을 외쳤던 전 법무부 장관처럼.
새로 맡게 된 보직 때문만은 아니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는 작가 이창래의 장편소설 ‘만조의 바다에서’ 생각이 났다. LA타임스가 “오늘날 이창래보다 더 뛰어난 소설가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서평을 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 우울한 가상의 미래에서 공공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 평범한 2등 시민들은 절대로 높은 담을 넘을 수 없다. 담 너머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집권 엘리트는 자신들이 선하다고 확신하며 울타리 너머 세계를 이렇게 지배한다. “모두가 중산층이 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