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사람들은 ‘뒤집기 신공(神功)’이다. 정치적 ‘설정’ 변경을 공깃돌 다루듯 하는 프로그래머다. 야당은 발 벗고 뛰어도 안 된다. 저들은 20대 초반부터 학생회 선거를 치르면서 뒤집기를 몸에 익혔다. 6·25 남침을 전쟁 유도설로 바꿔 학우를 홀렸다. 이젠 해수부 공무원 피살도 평양의 귀에 거슬리지 않게 맥락을 뒤집는다. ‘총격 피살’이란 팩트를 ‘월북 사망’ 의혹으로 물타기한다. 최근 벌어진 검란의 시발은 “법무장관이 99% 가해자인 일방 폭행 사건”인데, 양쪽에게 과실이 반씩 있다는 식으로 ‘추·윤 쌍피 사건’으로 만든다.

지난봄 야당은 4·15 총선을 조국 사태가 빚은 정권 심판이라며 자기네 승리가 유력하다고 봤다. 게다가 코로나 위기까지 겹쳤으니 선거는 하나 마나란 성급한 판단도 했다. 그러나 가구당 재난지원금 100만원, 팬데믹의 ‘국기 결집 효과(Rally round the Flag)’, 즉 국가 위기 때 국민들이 정부나 지도자를 전폭 지지하는 현상이 진즉 판세를 뒤집었다는 걸 몰랐다.

프레임(frame)이란 원래 필름의 한 토막이나, 창틀, 골격 등을 뜻한다. 인식론적으로는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본질과 의미를 규정하는 직관적 틀’을 말한다. 가장 흔한 사례가 ‘물컵에 물이 절반밖에 안 남았네’ ‘절반이나 남았네’라고 보는 상반된 인식이다.

오거돈 전 부산 시장의 성추행 땜에 내년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는데, 현지 유권자들은 가덕도 신공항에 온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 것들’이 자꾸 안 된다고 하는 데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여당은 그곳 분들의 인식 속에서 ‘오거돈’을 몰아내고 ‘가덕도’를 심어놓는 프레임 전환에 성공하고 있다.

작년에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불화수소 같은 전략 물자를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통보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보니 문재인 정권은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프레임을 짜고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가해자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이를 앙다물었고,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항일 의병을 들먹이며 죽창가를 외쳤다. 과거에도 성공 확률이 꽤 높았던 반일(反日) 프레임은 ‘토착 왜구’란 프레임으로 진화했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농락한 ‘윤미향 사태’ 때도 효과를 발휘했다.

저들은 ‘농단(壟斷)’과 ‘개혁’이라는 상반된 프레임을 갖고 있다가 상대에겐 ‘농단’을 씌우고 자기들은 ‘개혁’을 독점한다. 윤석열 총장이 지휘했던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사법 농단’이고, 추미애 장관이 전횡한 인사 폭거는 ‘검찰 개혁’이 된다. 앞 정부가 ‘국정 농단’ 스캔들로 무너졌으니 국민 귀에 익은 ‘농단’이란 말이 퍼뜨리는 바이러스 효과는 대단하다. 당신은 농단 편인가 개혁 편인가 하는 섬뜩한 질문을 들이댄다.

적폐 청산, 네 글자에는 피아를 가르는 기막힌 프레임이 들어있다. 이명박 박근혜는 적폐의 줄기요, 노무현 문재인은 청산의 계보라는 프레임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슬로건에는 노조원과 비납세자가 먼저고 기업인 납세자는 나중이라는 프레임이 숨어있다.

정부도 기업도 사람을 만날 때 ‘평판 조회’를 한다. 그런데 공판 검사를 위해 판사에 대한 세평(世評)을 알아본 것을 추 장관은 ‘불법 사찰(査察)’이라고 뒤집는다. 사찰이란 말에는 도청, 미행, 계좌 추적 같은 음험한 그림자가 배어 있어 대국민 설명도 필요 없다. 야당은 설명하려다 진다.

씨름판 뒤집기처럼 저들도 상대가 들어오는 힘을 역이용한다. ‘성추행 단죄’ ‘인사 전횡 추궁’을 ‘신공항 변경’ ‘불법 사찰’로 되받아치면서 상대의 공격력을 내 힘으로 전환한다. 핵심은 스피드다. 기술이 빨라야 눈 깜빡할 사이 상대를 모래밭에 누인다. 야당은 나동그라진 뒤에야 그게 뒤집기 기술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야는 여를 못 따라간다. 뒤집기에 홀린 유권자를 원상태로 돌려놓기는 불가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