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개발을 위해 방문한 뉴욕의 한 고급식당. /유재덕

‘과유불급’을 온몸으로 배운 적이 있다. 호텔에서 메뉴 개발을 맡던 시절, 새로운 요리를 찾기 위해 뉴욕과 보스턴으로 출장을 자주 다녔다. 일정은 빠듯했고, 최대한 많은 레스토랑을 경험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한 끼 식사가 ‘연구 과제’가 되어버렸다.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메뉴를 열 개 넘게 주문했고, 그런 식사가 하루에 여섯 번 이어지기도 했다.

아침부터 스테이크를 씹고, 점심에 파스타와 디저트를 밀어 넣고, 오후에 카페와 베이커리를 돌고, 저녁에는 다시 코스 요리를 마주하는 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맛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음식과 협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토하고 와서 다시 먹어도 혀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배가 부르자 혀의 감각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웬만해서는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요리사가 극찬하는 유명한 메뉴인데, 짜증스럽게만 보였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노신사의 시선이 느껴졌다. 경멸이랄까? 이상하고 재수 없는 녀석이라 여기는 듯했다.

특급 호텔에서 일하다 보니 값비싼 경험을 하면서도 심드렁하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을 한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들의 내면이 궁금했다. ‘분에 넘친다’라는 건, ‘지나쳐서 긍정적인 감각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배가 찢어지게 부른 상태에서도 맛있다고 느낀 메뉴가 있었다. 입에 넣는 순간 혀의 모든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맛의 이런 지점을 어떻게 찾아낼지 궁금해졌다. 167년 동안 수학자들이 풀어보려고 애쓰고 있는 리만 가설처럼, 나도 그 맛에 지금껏 매달리고 있다.

메뉴를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다. 무엇이 더 좋은가보다 얼마나 적절한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지나침은 무디게 만들고, 적절함은 감각을 되살린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요리는 경계를 다루는 일이고, 우리의 삶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