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무려 3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세계 최고의 연구소로 불리는 독일 막스 플랑크 협회(Max-Planck-Gesellschaft, MPG)는 현대 물리학의 문을 연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음악가의 길을 택할지 고민할 정도로 음악에도 뛰어났다. 마찬가지로 여러 노벨상 수상자에게 예술은 삶의 중요한 요소였다. 이들의 모습에서 예술과 과학을 분리하는 우리 인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합창에 푹 빠졌던 막스 플랑크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합창단에서 지휘를 맡았다. 더 나아가 오케스트라 지휘도 하고,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하며, 동시에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오랜 방황 끝에 물리학을 선택한 뒤에도 화성법과 대위법까지 섭렵한다. 그는 작곡도 여러 편을 하고, 심지어 오페레타를 만들기도 했다.

베를린 대학 교수가 된 막스 플랑크는 선배 물리학 교수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의 살롱에 참여하게 된다. 베를린의 지식인들이 모인 이 살롱에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그의 부인 코지마, 프란츠 리스트 등이 함께했다. 피아노 제작자로 유명한 스타인웨이 가문도 와서 꽤 훌륭한 연주자였던 헬름홀츠에게 여러 대의 스타인웨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막스 플랑크는 이 살롱에서 큰 인상을 받는다.

이후 막스 플랑크는 자신의 집에서 음악회를 열어 과학 네트워크로 활용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오토 한(Otto Hahn)은 테너 파트를 소화했다. 이 음악회의 단골에는 베를린 음대 학장이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도 있었다. 브람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요아힘에게 헌정된 곡이다. 막스 플랑크는 요아힘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과학은 이렇게 음악을 통해 확장되었다.

막스 플랑크와 음악 친구였던 수학자 룽게(Carl Runge)는 과학 도시 괴팅겐에서 음악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룽게의 제자 막스 보른(Max Born)은 스승이 만든 과학자 음악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했다. 룽게 딸의 친구와 결혼한 그는 수준급 피아노 연주자였고, 여기서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와 피아노로 연결되어 두 사람은 양자역학의 꽃을 피우게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피아노 독주회에 관객으로 왔던 여성과 결혼했다.

이들 과학자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막스 플랑크가 진지한 예술적 가치를 추구했고, 음악은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독일의 과학 전성기는 예술을 매개로 펼쳐졌다. 음악 네트워크로 연결된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오토 한, 막스 보른, 하이젠베르크는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은 과학 연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바이올린을 연주할 정도로 바이올린을 좋아했다. /(c)Alamy

‘생각의 탄생’ 저자로 잘 알려진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2008년 “예술이 과학적 성공을 이끈다”는 논문을 발표한다. 1901년부터 2005년까지 모든 노벨상 수상자를 전수 조사한 결과, 노벨상 수상자들은 예술 활동에서 다른 과학자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한 분야만 파고든 게 아니라, 다방면에 뛰어나고 박학다식한 과학자들이었다.

구체적인 통계로는 일반 과학자들의 예술 활동 수는 1인당 0.33개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은 0.94로 평균적으로 거의 모든 노벨상 수상자가 예술을 병행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들은 다른 과학자들에 비해 시각 예술 분야에서 7배, 공예 분야에서 7.5배, 작가 분야에서 12배, 공연 예술 분야에서 22배 더 높은 참여를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 활동이란 ‘예술에 조예가 있다’라는 정도를 넘어선다. 미술품 수집이나 음악 감상이 아니라 막스 플랑크나 하이젠베르크처럼 구체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미술은 전문 또는 준전문 미술가로서의 경력이고, 작가란 대중과학 서적이 아니라 소설, 극작가, 시인으로 문단의 인정을 받은 과학자들이다. 그리고 과학 저널 게재보다 문학지에 등단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노벨상 수상자들의 IQ는 120~130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의 독특한 창의력은 비(非)지능적 요소, 즉 일반 과학자들과 확실히 차별되는 예술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루트번스타인 교수의 분석이다. 공예나 시각 예술은 손과 눈의 협응력, 도구 사용법, 패턴 인식을 길러주어 실험 역량을 높이고, 글쓰기나 공연 활동을 즐기는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들 노벨상 수상자가 과학과 결합한 예술 활동으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넓혀나감으로써 하나에서 얻은 지식을 다른 분야에 효과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은 한 분야에 매몰되기보다 여러 분야의 재능도 중요하므로, 창의적인 과학자 양성을 위해서는 예술 교육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미국 교육 혁신을 이끌던 MIT 총장 찰스 베스트 역시 “예술 분야가 없는 MIT는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학 인재들이 예술 활동을 병행하기 쉽지 않다. 아마도 입시 때문일 텐데, 우리 과학자들이나 교수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불 꺼지지 않는 연구실’이나 ‘한 우물을 파라’ 같은 표현은 학부모들과 아이들에게 비친 과학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협소한지 보여준다. 예술을 한다고 노벨상이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릴 때부터 다양한 방면으로 사고를 확장한 것이 노벨상 수상자들의 공통점이라면, 지금 우리 교육이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베스트셀러 ‘생각의 탄생’의 저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교수가 지난 2014년 12월 방한해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