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3월 26일, 나는 중국 뤼순 감옥 앞에 서 있다. 방금 오전 10시 저 안에서, 항일 독립투사이자 천주교 신자 토마스 안중근에 대한 교수형이 집행됐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하얼빈 역에 도착했다. 안중근은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은 뒤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를 브라우닝제 M1900 반자동 권총으로 저격, 세 발을 명중시켰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의 적(enemy)이 누구인가를 보면 된다. 그날 안중근의 적 이토 히로부미는 일제 내각총리대신, 초대 한국통감 정도가 아니었다. 근대 일본을 설계하고 건설한 장본인이었다. 안중근은 이토를 잘 알고 있었다. 반면, 이토에게 안중근은 인간이 아니라 청천벽력이었다. 피격당한 이토는 이송 중 죽었는데, “조선인인가?”라고 물어봤다는 설이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물음 안에는 잠깐 만난 제 일생 최대의 적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다. 사건의 파장을 우려한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고해성사 집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말을 뒤집으면,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이토 히로부미라는 한 인간을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안중근의 고뇌가 인증된다. 빌렘 신부는 금지 명령을 어긴 채 뤼순 감옥으로 가 안중근에게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행했고, 징계받았다.
1993년 8월 21일, 김수환 추기경은 미사 집전 중 안중근의 신앙적 신분을 옹호했다. 안중근은 자신을 대한독립군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으로 대우할 것을 요구했다. 전쟁 중 군인들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며 적국 군인을 죽인다. 재판정과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맞이하며 보인 안중근의 자세와 입장은 스스로 후손들을 위한 ‘상징’이 되어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애국심, 민족애, 희생정신 등등 말고도 안중근에게서 배울 점은 다음과 같다. 적이 없음을 자랑하는 사람은 가까이하지 마라. 존재 자체가 미심쩍다. 당신의 적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