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는 ‘대통령실’이 따로 있다. 어두운 배경에 경직된 자세를 한 비슷비슷한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지나 ‘존 F 케네디’ 앞에 서면 그 파격에 놀라게 된다. 거대한 캔버스 속에서 케네디는 셔츠 차림으로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 몸을 기울이고 있다.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거친 붓질로 쓸어 올린 파랑, 노랑, 초록의 색면을 뚫고 나온다. 작가는 일레인 드 쿠닝(Elaine de Kooning·1918~1989). 당시 미술계에서도 드문 여성이었지만, 대통령 공식 초상화가로도 그녀는 최초의 여성이다.
드 쿠닝이 ‘모델’ 케네디를 처음 본 건 1962년 12월 플로리다의 팜비치였다. 기자들 가운데 서 있던 케네디를 두고 화가는 “황금빛 광채에 둘러싸여 홀로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TV 시대의 첫 대통령’으로 불리지만, 그때의 TV는 컬러가 아니었다. 흑백 화면은 그의 ‘포도처럼 진한 자주색’ 눈동자와 황금빛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이토록 화려한 외모라면 강렬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제스처로 인물의 개성을 빠르게 포착해 그려내던 드 쿠닝에게 더없이 훌륭한 모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케네디가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젊고 활기찬 그에게 초상화를 위해 멈춰 설 시간은 없었다.
드 쿠닝은 늘 스쳐 지나가듯 사라져 버리는 케네디를 붙잡기 위해 수없이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더해 초상화를 완성하기도 전에, 케네디는 암살자의 총탄을 맞고 사라져 버렸다. 한참 뒤 완성된 초상화에는 냉전의 한복판에서 인간을 달에 보내려 했던 시대의 진취적 이상이 담겨 있다. 여전히 스쳐 지나가듯 아스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