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단팥이 가득 든 자신의 머리를 떼어 나눠주는 '호빵맨'. 머리를 떼어주면 호빵맨의 전투력이 크게 떨어지지만 주저하지 않는다. /유튜브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거실로 나가 보니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자주 보는 ‘페파피그’나 ‘시크릿 쥬쥬’, 혹은 ‘티니핑’ 시리즈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호빵맨? 언제 봤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얼굴이 화면 속에서 힘차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배고픈 이에게 자신의 머리를 뜯어 먹으라고 건네주는 호빵맨 이야기를 흥미롭게 시청했다.

문득 책장에 오래 꽂혀 있던 호빵맨의 창시자 야나세 다카시의 책 ‘네, 호빵맨입니다’가 생각나 꺼내 들었다. 몇몇 만화가들이 그렇듯 그 역시 젊은 시절 근사한 캐릭터를 만든 덕에 평생 예술가의 그늘 같은 건 모르고 살았을 거라고 막연히 상상했는데, 아니었다. 초미숙아로 태어나 평생 외모와 체력에서 열등감을 지닌 채 살았고,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어머니의 재혼 후에는 큰아버지 집에 얹혀살았다. 징집되어 20대의 절반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잘 팔리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숱한 천재와 수재들 사이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전쟁에서 느낀 극한의 배고픔을 떠올리며 ‘호빵맨’이라는 그림책을 그린 것은 50대 중반이던 1973년이었지만 세간의 평가는 혹독했다. ‘호빵맨’이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건 1988년, 그의 나이 69세 때 일이었다.

세상의 진실은 다 뻔하기 때문에 누가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물리적 전쟁과 인생의 전쟁을 모두 겪어낸 야나세 다카시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그에 따르면 정의란 “눈앞의 굶주린 사람에게 빵 한 조각을 건네는” 일이고, 낙관이란 “언제나 앞을 바라보고 넘어져도 앞으로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빵맨은 잘생기지도, 힘이 세지도 않지만 늘 웃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그저 배고픈 누군가에게 자신의 얼굴을 떼어내 먹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