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신문사 문화부 회식 자리에 우연히 동석한 적이 있었다. 신작 소설 인터뷰를 하다가 이어진 술자리였는데(그랬다. 낮술이었다), 데스크와 기자 두 명도 연이어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주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인터뷰이는 분명 나였는데, 점점 부장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주로 부장이 말을 하고, 나머지 기자들과 나는 가만히 듣는 상황. 기자들은 부장이 무슨 말만 하면 손뼉까지 치며 웃어댔는데, 그 말이 좀 그랬다(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뭐 이런 내용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대부분 집에 누워 있어” 등등). 아니, 저 말이 그렇게 웃기나, 생각했지만... 어느새 다른 기자들 사이에서 함께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내가 이렇게 마음이 너른 사람이다). 술자리가 끝나고 부장도 떠난 후, 내 인터뷰를 담당했던 기자가 잔뜩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작가님, 오늘 인터뷰 부족한 내용은 이메일로 마저 진행할게요.” 아니, 뭘 한 게 있어야 보강을 하든 말든 하지? 나는 기자에게 진지한(취할 때마다 나는 진지해진다) 목소리로 물었다. “기자님, 정말 부장님이 웃겨요?” 그러자 기자는 약간 정색한(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가 툭, 내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아이 참, 작가님도. 뭘 그런 걸 묻고 그래요?” 그러곤 손 인사를 하고 지하철역 방향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예. 몇 년 전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 병원에서 꽤 열심히 물리 치료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커튼이 처진 환자용 침대에서 고주파 마사지를 받고 있었는데, 바로 옆 침대에서 조금 나이 든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오늘은 수간호사 아니다.” 그런 후 잠시 침묵. “나 오늘은 목간호사다.” 말하자면 오늘은 목요일이라는 말씀. 무슨 저런 뻔한 말씀을 하시나, 생각하기 무섭게 들려오는 다른 간호사들의 웃음소리... 아이 씨, 나는 괜스레 허리가 더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유머는 우리 사이의 숨겨진(그러나 엄연한) 계급 관계를 잘 드러내 주는 척도이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유머란 단순히 웃기는 말이 아니고, 누가 웃을 수 있고, 누가 웃어야 하며, 누가 웃지 않을 자유를 갖는지를 가르는 가장 일상적인 계급 장치인 셈이다(우리 모두 평등하다는 말은 하지 말자). 한국에 ‘부장님 유머’라는 독특한 장르가 발명된 것은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철저한 계급 사회라는 것을 드러내 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부장님 유머는 왜 웃기지 않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그 유머가 ‘즐거움’보다는 ‘반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웃음’보다는 질서의 재확인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부장님 유머’가 난무하는 조직은 사실 불안이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모두 다 계급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씀. 그러니, 전국의 수많은 부장님이여, 되지도 않는 유머는 가급적 삼가자. 웃기면 아랫사람들에게 부드러워 보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자. 그래도 사람 좋은 부장님이라는 자기 서사가 완성될 것이라는 오판도 하지 말자. 그냥 묵묵히, 깔끔하게 일 잘하는 부장이 가장 좋은 부장이다. 유머는 친구들 앞에서만, 동등한 관계들 앞에서만 하는 거로.

서울 강남에 있는 선정릉(宣靖陵)은 조선 성종과 정현왕후, 중종이 묻힌 릉이다. 임진왜란 첫해 선정릉은 일본군에 의해 파괴됐다. 시신도 불타 사라졌다. 종전 후 조선정부는 전쟁 사과국서와 왕릉 파괴범 색출을 국교 정상화 조건으로 내걸었다. 민(民)이 입은 피해 배상은 뒷전이었다. 사진은 중종릉인 정릉.

이렇게 야박하게 말하고 나니, 어쩐지 부장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미안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조선왕조실록’ 중종 32년 3월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자 한다. 그 무렵 명나라에서 사신 두 명이 찾아왔는데, 중종이 직접 경회루에서 연회를 베푼 모양이다. 한데 이 사신들이 만취해서 중종의 익선관에 꽃을 꽂아 달라고 무리한 부탁을 드렸다. 조선의 신하였으면 당장 사약을 내리고도 남았을 텐데, 하아, 중종은 그걸 또 얌전히 꽂고 말았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사신 중 한 명이 그러지 말고 우리처럼 좌우로 꽂아달라고 청하자, 하아아아, 중종은 조선 신하들 다 보는 앞에서 나머지 한쪽에도 꽃을 꽂았다. 그러곤 웃으면서 ‘한 잔 더 드시라’고 인자하게 말했다고 한다(조선왕조실록에는 이 부분에 대해 “모시는 신하들이 두 사신의 무례함을 분개하고 한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도 나는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만날 때마다 짓는 표정을 보면 마음이 좀 불편해진다. 그때마다 뉴스에 보도되는 대통령의 유머를 들으면 더 씁쓸한 심사가 되고 만다. 정리하자. 유머는 계급 관계를 드러내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다 먹고사는 일에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좀 짠해진다. 그러므로 이런 결론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유머는 짠하고, 부장님들도 다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