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식탁 아래로 기어들어 가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웅크리고 앉은 나를 둘러싼 식탁과 의자의 육중한 다리들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성벽 같았다. 상판을 통해 웅웅대며 들려오는 어른들의 대화 소리는 세상에 없는 자장가였다. 내가 부모가 된 다음에는 아이들이 흘린 밥알을 줍는 게 아니면 굳이 식탁 아래로 들어갈 일이 없었다. 그나마도 무릎을 꿇은 채 어두컴컴한 식탁 아래서 바닥을 훑으려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다. 어린 시절 그토록 안온했던 ‘식탁 아래’는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미술관에서 ‘식탁 아래’와 마주칠 때까지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미국 조각가 로버트 테리엔(Robert Therrien·1947~2019)의 ‘식탁 아래’는 2015년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더브로드 미술관’이 개관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같은 전시장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물론 식탁 아래로. 높이 3m, 가로 8m에 달하는 거대한 식탁과 의자들은 관객 10여 명이 한꺼번에 아래로 들어가도 넉넉하다.
테리엔은 이처럼 식탁, 의자, 접시, 혹은 냄비와 프라이팬이 가득 들어 있는 찬장까지 여느 가정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의 사물을 대단히 정교하고 세밀하게 재현하되, 과장된 크기로 확대해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만들어 낸다. 그의 전시장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거인국에 도착한 걸리버, 혹은 이상한 나라의 음료를 마셔 버린 앨리스가 된다. 아니면 시간을 거슬러 어두운 식탁 아래서 웅크리고 있던 어린 시절 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잠시나마 ‘어른’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친절한 미술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