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밤,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한 줄 시 쓰기 워크숍이 있었다. 나는 그날 낮에 인왕산에 올라, 아직 바스러지지 않고 고운 자태로 남아 있는 낙엽 열두 장을 골라 책 사이에 끼웠다. 겨울 낙엽이라 여기저기 빛이 바래고 구멍이 뻥뻥 났지만,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사람들에게 낙엽을 한 장씩 나누어주며 내가 말했다. 자, 지금부터 10분 동안 자기 앞의 낙엽을 보며 그림을 그리듯 글로 묘사해 보세요. 글로 스케치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썼다. 한 점에서 시작하여 쭉 뻗은 길이 여기 있다. 이 흉터는 뜨거웠던 지난여름날의 상처일까. 삐죽삐죽한 잎 끝이 “건드리지 마!” 하고 소리치는 중2병 걸린 학생 같네, 하지만 바스러질까 불안한 그 속은 오죽하겠어. 기지개를 쫙 켜며 불꽃 같은 기세로 첫눈을 뚫고 나를 만나러 왔구나. 자유롭지만 규칙적인 너처럼, 나도 자율 속에서 나만의 일정한 루틴을 찾고 싶다. 보다 보니 엄지와 검지로 확대하고 싶어, 운명적인 만남은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가 보다.
그다음에는 캐러멜을 우물우물 씹으며 이게 무엇과 비슷한지 묘사해 보았다. 씹을수록 어금니에 악착같이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게 꼭 회사에서 나 같네. (일동 폭소!) 달콤한 뒷맛이 긴 여운으로 남아서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떠나간 연인 같아. 겉으로는 단단한 척해도 속은 금방 물러지는 게 영락없이 수능 본 고3이다. 턱 디스크로 씹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니, 이 달콤함이 나에게는 씁쓸함입니다....
시 쓰기 모임 때마다 느낀다. 저마다 직업은 달라도 누구나 마음속에 시인이 살고 있구나. 몰입해 보기는 사람을 시인으로 만들어준다. 무언가를 집중해 들여다보다가 거기에 나의 삶과 경험이 중첩될 때, 다른 누가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언어로 말하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완성된 존재다. 우리의 글처럼 저마다 세상에 하나뿐인 경험과 시선을 가진 존재로, 귀하고 아름답고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