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유엔총회가 개최된 프랑스 파리 샤요궁 중앙 건물 지하에 있었던 대회의장. 본회의와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린 곳으로 1층에 각국 대표가 앉았고 왼쪽 뒤 2층에 있는 별실이 옵서버석이었다. 오른쪽 뒤 유리 부스 안에 통역사들이 보인다. /운석장면기념사업회

나는 1948년 12월 11일 프랑스 파리 샤요궁 앞에 있다. 어제 UN 총회에서 전문과 본문 총 30개 조 ‘세계 인권 선언문’이 소련과 동유럽 6개국,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권하에 채택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반인류적 만행들의 반복을 막기 위한 윤리 기준 합의와, 세계가 하나라는 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제21조까지에서 강조되는 바는 ‘자유권적’ 기본권이다. 인종·성별·종교에 대한 차별 금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 노예제와 고문 금지 등 사람이라면 태어난 그 순간부터 가지게 되는 권리이자 시민으로서의 자유, 정치적 자유를 포함한다.

이러한 자유사상은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창발되었고 대체로 그런 종류의 권리들만을 의미했는데, 후일 UN 안에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상이 스며들면서 국가가 모든 국민의 생활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회권적 기본권(사실은 사회주의적 기본권)’들로까지 가지를 뻗어나갔다. 한데 여기서 두 가지 모순점을 숙고할 만하다. 첫째, 본래의 자유권적 기본권을 지키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 선언에 버젓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중공)의 헌법은 공산당 일당 ‘인민민주독재’를 명기하고 있다. 정치범 강제 수용소를 비롯한 자유권적 기본권 탄압이 일상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둘째, 사회권적 기본권이 자유권적 기본권과 근본적으로 상충된다는 점이다. 물론 말이야 다 좋은 말들이니 한 바구니(선언문) 안에 넣으면 번드르르 때깔이 난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 작동하게 될 적에는 선한 의도와는 정반대 결과들이 속출되기 십상이다.

다만 그런 티가 덜 나는 것은, UN이 하나의 국가가 아닌 ‘연합 국가적 상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계인권선언은 서구 자유주의 사상의 브랜드 가치를 담보하고 있다. 지금 남한의 현실이 대한민국 헌법은 고사하고 이 세계인권선언에도 못 미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역사가 정해진 대로 진보한다는, 설탕 바른 쥐약 같은 거짓말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