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서부 도시 캉에서 고교에 다니는 리디 비주아른씨의 딸은 올해 독학으로 프랑스어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담당 교사가 지난해 11월 휴직했는데, 계약직 교사가 2월 말에야 부임했기 때문이다. 비주아른씨는 일간 르몽드에 “다른 학생들이 10번 넘게 한 모의 연습을 내 딸은 두 번밖에 못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남서부 앵 지역의 페르네볼테르 국제고교는 아예 1년 내내 프랑스어 교사가 없었다. 학교는 온라인으로 수업 시수를 때웠다. 학부모들이 관할 교육청에 여러 번 신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고교 졸업 시험)에서 일정 이상 점수를 얻으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평등하게 교육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정작 학교에 교사가 없어 바칼로레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학생이 허다하다. 예산이 부족해 교사를 제대로 충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픽=김현국

◇교사 연금 주느라 학교에 쓸 돈 부족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프랑스의 교육비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5.4%로 괜찮아 보인다. 문제는 28%가 교사 연금에 쓰인다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교사를 비롯해 공무원 연금은 현재 재직자들로부터 걷은 연금 보험료를 수급자에게 지급하되, 약속한 금액에 모자라면 사용자인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나머지를 책임지는 방식이다. 정부의 사용자 부담률은 고령화로 퇴직 교사가 급증한 탓에 2006년 49.9%에서 올해 78.3%로 급증했다.

연금이 모든 재원을 빨아들이면서 일선 학교는 꼭 필요한 지출마저 줄일 수밖에 없다. 채용 인원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급여가 낮아 교직을 기피한다. 결원이 생겨도 제대로 메우지 못한다. 특히 교사들이 기피하는 지방, 중소 도시,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수업 결손이 집중된다. 퇴직 교사를 위해 미래 세대의 교육이 희생되는 양상이다.

프랑스의 고교 졸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고사장의 모습. 이 시험은 나폴레옹 황제 때인1808년에 처음 실시됐다.

◇제3의 도시 리옹에 교사 결원 학교 75%

프랑스는 만성적 재정 적자로 재정 위기까지 닥쳤다. OECD에 따르면, 프랑스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2024년 기준)은 116.5%로 영국(93.0%), 독일(63.3%)을 훌쩍 뛰어넘는다. 적자 재정이 쭉 이어지던 상황에서 경기 부진과 감세 정책 탓에 적자 폭이 5.8%(2024년 기준)까지 늘었다. GDP 대비 30.7%인 사회복지 지출은 줄이지 못하면서 세입만 줄었기 때문이다. 공적 연금 지출액(GDP의 14.1%)은 이탈리아(15.5%) 다음으로 많다. 결국 재정 적자 폭을 줄이는 과정에서 정치적 저항이 약한 교육 예산이 희생됐다.

6월 교육부 통계국(DEPP) 발표에 따르면 중·고교 전체 수업 시수 가운데 7%가 교사가 없어 결손이 났다. 한 학급이 1년에 3주 안팎의 수업을 통째로 날리는 셈(수업 시수 연간 900시간)이다. 국립교육노조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명이라도 교사 결원이 있는 학교가 전국의 55%에 달한다. 결원이 있는 학교 비율은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파리 외곽의 크레테이의 경우 72%에 달한다. 제3의 도시 리옹도 75%에 이른다.

◇초등생 수학 점수 58국 중 42위 그쳐

교육 성과가 좋을 리 없다. OECD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15세 대상)에서 프랑스 학생들의 읽기 성적은 2000년 평균 505점에서 2022년 474점으로 하락했다. 특히 수학은 2003년 511점에서 2022년 474점으로 곤두박질쳤다. 수학·과학 성취도 국제 비교(TIMSS)에서 초등학교 4학년의 수학 성적(484점)은 58국 가운데 42위에 그쳤다.

다른 공공 서비스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줄어들면서 약 3만5000곳에 달하는 코뮌(최말단 행정구역) 가운데 3분의 2 이상에서 우체국, 경찰서, 세무서, 철도역, 병원의 근무 인원을 줄이거나 통폐합에 나섰다. 지난해 내과·외과 병동 10곳 가운데 7곳은 의료 인력이 부족해 신규 환자를 받지 못했다.

붕괴 위험 다리, 예산 부족으로 수수방관… TGV 연착도 늘어

고속철도 TGV도 시설 투자가 미뤄지면서 연착이 늘어나고 있다. /franceitalybytrain

파리에서 자동차로 2시간쯤 걸리는 작은 마을 보니쉬르루아르의 상징은 360m 길이의 현수교다. 근처에 비슷한 다리 3개가 루아르강 양쪽을 이어준다. 문제는 1950년대 지어진 다리들이 낡아 보수가 필요하지만, 예산이 없어 지자체들이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라고 프랑스 방송사 TF1이 보도했다. ‘12톤 이상 버스·트럭·농기계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있지만, 우회 도로가 없어 무시되기 일쑤다.

재정 위기에 처한 프랑스 정부가 당장 급하지 않아 보이는 예산을 줄이자 도로, 교량, 철도, 수도 등 사회기반시설(SOC)이 망가지고 있다. 환경부 산하 공공위험평가센터는 전국 6만3000개 교량 중 25%는 보수 공사가 필요하며, 총 33억유로(약 5조6400억원)가 소요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런데 2023년 교량 보수에 책정된 예산은 불과 5000만유로. 보수를 못해 폐쇄되는 다리가 늘어나고 있다.

고속철도 TGV도 시설 투자가 미뤄지면서 연착이 늘어나고 있다. 교통규제청(ART)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운행편 중 22%가 취소되거나 5분 이상 늦어졌다. 전년 대비 3%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철도망 노후화가 주된 원인이다. 일반철도는 연착되는 비율이 더 높다. 철도망 평균 연령이 28.6년에 달한 상황에서 제 속도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운송량은 2040년까지 25% 줄어들 전망이다.

상수도는 수도관 누수율이 20%를 넘는다. 인구 1000명 이하 코뮌 가운데 4분의 1은 누수율이 50% 이상이다. 가뭄 때 급수 제한이나 트럭을 이용한 물 공급으로 버티는 지자체도 상당수다.

극우·극좌 정당 부상...결국 연금 개혁도 좌초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원내대표. /조선일보 DB

2018년 말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이 몇 달에 걸친 항의 시위로 불붙은 ‘노란 조끼 사건’ 당시 엘리제궁(대통령 집무실)에서는 의사가 부족해 병원 진료를 받기 힘든 ‘의료 사막’ 지도가 화제를 모았다. 노란 조끼 시위 다발 지역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동북부의 몰락한 제조업 지대, 빈부 격차가 심한 남부 해안 지대, 시골·중소 도시들이었다. 이후 이 지역들은 극우 ‘국민연합’(RN)의 표밭이 됐다. 지금도 ‘의료 사막’은 “사회적·영토적 분열의 핵심 지표”로 언급되고 있다.

프랑스의 개혁이 어려운 건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치의 구조적 무능함에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인 노동계급이나 지방 유권자가 소외되면서 정당의 지지 기반이 불안정해졌다. 현재 프랑스 하원 577석 가운데 중도우파 성향인 여권은 4개 정당이 연합했지만 과반에 한참 모자라는 213석에 그친다. 야권은 중하층·지방·고졸 이하의 지지를 받는 극우 국민연합(126석)과 청년·대졸 진보가 지지하는 극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72석)’를 비롯해 7개 정당 356석으로 여권을 압도한다(무소속은 8석).

여권, 극우, 좌파 등 3개 세력 모두 지지 기반이 넓지 못해 정치권에 3극 구조가 계속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 속에서 정당 간 타협도 어렵다. 2023년 어렵게 통과된 연금 개혁을 위한 정년 연장안이 지난달 하원에서 번복되고, 2030년까지 시행을 중단키로 한 것은 그 결과다. 무능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25년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시앙스포 CEVIPOF)의 연례 조사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나 같은 사람들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이 85%에 달한다. ‘정치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6%로 독일(47%), 이탈리아(39%)보다 훨씬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