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찬 바람 불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군고구마, 반으로 가르면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찐빵, 시린 손끝과 발끝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털장갑과 털양말, 향긋한 커피 향과 재즈가 감도는 아늑한 카페,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다가서면 타닥타닥 소리가 정겨운 모닥불, 그리고 맨살에 닿는 싸늘한 공기를 안고 오들오들 떨면서 들어가는 뜨끈한 노천 온천.

발끝으로 살짝 물의 온도를 감지하곤 얼른 뛰어들어 턱까지 몸을 담그면, 아,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감탄이 절로 나며 전신이 나른해진다. 머리는 여전히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매서운 바람 속에 있는데 몸은 42도가 넘는 열탕 속이니, 그 온도 차로 온천물이 몸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듯하다. 귓가에는 찰랑거리는 물소리, 어디선가 새소리도 들려온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나뭇잎의 군무도 아름답다.

어라, 허벅지에 뭐가 붙었네. 손으로 떼어 물 밖으로 꺼내 들자 붉게 물든 촉촉한 단풍잎이다. 갈라진 손이 일곱 개. 예쁜 모양 그대로 온천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구나. 떨켜가 부풀어 오른 걸 보니 늦가을 바람에 자연스럽게 가지를 떠난 모양이다. 가만히 손등에 올려본다. 소멸을 상징하는 빛깔이 별 모양으로 살결에 물들어간다. 정교한 무늬와 빛바랜 색감이 뜨거웠던 젊은 시절을 향한 작별 인사 같다. 생명의 끝을 노래하는 단풍 낙엽이 아쉬워 목욕하는 내내 곁에 두었다.

계절은 암호로 가득하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고,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얼어붙고, 청설모가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비축하며, 태양 빛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지금은 깊은 잠으로 가는 길목과도 같다. 겨울은 잠자는 땅이다. 소멸로부터 다시 잉태를 품는 긴 어둠이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따뜻한 것들로 이 시기를 견딘다. 인간은 온기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에. 저마다 소소한 아랫목을 마련해 두어야 할 때가 왔다.

일본의 한 노천온천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