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오른쪽)가 10일 도쿄 국회에서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있다./AFP연합뉴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임진왜란 직전 치밀한 정탐 활동을 전개하여 조선군도 모르는 샛길까지 표시한 한반도 정밀 지도를 만들었다. 가토와 고니시 등이 이끄는 왜군은 보름 만에 한양에 입성했다. 영화나 일본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닌자(忍者)는 막부 시대 첩보 수집과 파괴 공작을 수행한 정보원이었다.

140년 일본 내각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파격적 외교 안보 행보에 나서고 있다. 대만 유사(有事)를 일본 유사로 규정하는 한편 ‘핵을 보유, 제조 및 반입하지 않는다’는 비핵 3원칙도 재검토 중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직후 외교 안보 역량 강화를 위한 조치로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에게 ‘국가정보국’ 신설을 지시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영국 비밀정보국(MI6)처럼 부처별로 흩어진 정보를 한곳으로 모아 종합적으로 분석·판단하겠다는 의미다.

국가 정보 기능 강화는 다카이치 총재의 지론으로,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국가정보국 창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본유신회도 같은 입장이어서 자민당과 맺은 연립정권 합의서에 “일본의 취약한 국가 정보 기능의 강화가 급선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며 “2026년 정기국회에서 내각 정보조사실과 내각정보관을 격상해 국가정보국과 국가정보국장을 창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은 종전 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부처별로 흩어진 정보를 모아 분석, 처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며 ‘일본판 CIA’를 만들려 했다. 군국주의 시절 내각정보국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서 1952년 현재의 내각 정보조사실을 만드는 데 그쳤다.

2007년 아베 신조 전 총리도 통합정보기관 신설을 추진했으나 기존 정보기관들의 반대 등으로 무산됐다. 2022년 3대 안보 문서 개정 당시에도 국가정보국 창설 논의가 있었다. 2차 대전 패전 관련 보안 정보기관에 대한 일본 국민의 거부감이 컸다. 이젠 총리가 통합형 정보기관 설립을 지시할 만큼 국제 정세가 복잡하다는 판단이다. 전후 일본은 군사 안보는 미국 정보에 의존하며 경제 정보에 주력했다. 세계에 진출한 기업들이 수집한 정보가 비공식적으로 보고되는 독특한 정보 복합체를 형성했다.

그래픽=양인성

현재 일본의 정보 기능은 관방부 산하 내각 정보조사실, 법무성 공안조사청, 경찰청 외사정보부, 외무성 국제정보총괄관, 방위성 정보본부 등으로 분산돼 있다. 5개 기관의 정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각각의 정보가 총리실로 올라가는 구조다. 중대 사안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합동으로 분석한다.

일본 내각조사실에 정보를 직보하는 경찰청 외사정보부의 역량은 간단치 않다. 우리 경찰과는 정보 수집 차원이 다르다. 내각 정보조사실의 책임자도 대부분 경찰 출신이 맡아왔다. 외사경찰의 역사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제반 법령을 정비하고 치외법권을 확립한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대전 이전의 외사경찰은 국방 차원에서 적성 국가의 첩보 수집 및 공작 활동을 전개했다. 1941년 러시아 간첩 ‘조르게 사건’ 적발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발표된 후 일본 외사경찰은 새롭게 출발했다. 경찰청 외사정보부는 2004년 외사과와 국제 테러리즘 담당과로 구성했다. 해외 주일 대사관에는 외사경찰이 파견되어 글로벌 첩보 수집 기능을 수행한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통합형 정보기관 창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행 외사경찰이 수행하는 실질적인 정보 수집에 허점이 발생했다. 외사경찰은 상대국의 첩보 수집 활동을 차단하는 방첩(counter intelligence) 기능에 치중했다. 물론 5만여 명의 인력을 자랑하는 도쿄 경시청도 외사경찰과 함께 정보 업무를 관장한다.

과거 1970년대 적군파 활동 탐지, 옴진리교 적발, 북한의 일본인 납치 추적, 일본 내 러시아와 중국 스파이 추적 등 주로 방첩에 주력했다. 외사경찰의 정보 수집은 신냉전 시대에 사각지대가 급증했다. 국내에서 저인망식으로 동향을 파악하는 첩보가 해외와 연계된 활동으로 공백이 발생했고 추적이 쉽지 않다.

둘째, 급증하는 중국의 대일 첩보 수집 활동에 획기적인 대응이 필요해졌다. 일본은 중·러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는 일본 각계에 침투했다. 중국 군민 융합 기업인 ‘화웨이’가 2002년 도쿄사무소를 개설하고 9년 후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에 가입하면서 일본 정·재계는 중국 정보망에 걸려들었다. 화웨이 설립자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연구기관 출신이며, 전 회장인 쑨야팡은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 통신사업 부문 출신이다.

기존 외사경찰로는 친중 공작에 대한 방첩 활동이 어려웠다. 일본 해역에 빈번하게 출몰하는 중국 정보 수집 함정들은 점차 작전 범위를 확대했다. 외사경찰과 방위성, 외무성이 중앙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정보 분석을 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마지막으로 AI 시대를 맞이하여 기존 방첩 활동 이외에 공격적인 대외 정보 수집 확대와 함께 비밀 공작(covert operation)의 필요성이 증가했다. 치열한 정보 전쟁 시대에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필요해졌다.

2019년 외사경찰 출신으로 41년 만에 정보 활동 최고 책임자에 올랐던 기타무라 시게루 전 일본 국가안보국장은 수십 년간의 경험을 “정보 업무 현장에 있을 때 오감은 맑고 예리해진다”고 했다. 일본은 외교, 정보, 군사 및 경제 등 4가지 기능(DIME)을 통합해 외부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통합형 정보 공동체가 종합 판단 정보를 총리 및 내각 관방장관 등에 적기에 제공하는 구상은 국가정보국 신설로 현실화됐다.

중앙정보기관 설치는 일본 보수 세력의 오랜 염원이었다. 위기 시에 정보는 무기가 된다. 정보를 경시하는 국가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국익을 둘러싼 창과 방패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정보 전쟁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60여 년의 정보 활동 경험이 축적된 멀쩡한 정보기관조차 무력화시키고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우리 현실과 일본의 국가정보국 신설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정보기관을 여의도 정치에 끌어들이고 수장의 구속이 빈번한 우리 정보기관은 좌표를 상실한 신세다. 비교 우위에 있던 정보기관조차 후발 주자인 일본 국가정보국을 벤치마킹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