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를 좋아했다. 식재료로 좋아했다. 문어숙회만큼 좋은 술과 어울리는 음식은 찾기 힘들다. 내가 먹어본 최고의 문어 요리는 이탈리아식 샐러드 ‘인살라타 디 폴포’다. 지중해 문어는 부드럽고 단맛이 강하다. 지금 이 문단을 쓰며 침을 삼키는 중이다.
‘좋아했다’는 과거형을 쓴 이유가 있다. 더는 문어를 먹지 않는다. 몇 년 전 시청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탓이다. 해양학자가 문어와 교감하며 보낸 1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교감이라는 단어는 부족하다. 문어는 그냥 똑똑한 게 아니었다. 인간적이었다. 문어숙회를 포기하게 할 만큼 인간적이었다.
나만 포기한 건 아니다. 버진 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도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문어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많은 사람 중 하나다. 스페인이 추진하던 세계 최초 문어 양식장에 제동이 걸린 이유도 이 다큐멘터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에게 문어를 먹지 말라 강요할 생각은 없다. 문어 생각하면 아직 침이 흐른다. ‘나의 오징어 선생님’이라는 다큐멘터리는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튜브와 OTT 같은 뉴미디어는 몇몇 동물의 운명을 바꿨다. 한국에서 가장 혁명적으로 운명이 달라진 동물은 고양이다. 지난 세기 한국인은 고양이를 딱히 좋아하진 않았다. 매서운 눈으로 쓰레기를 헤집는 불길한 짐승이었다. 고양이 동영상이 유행하자 모든 게 달라졌다. 이 묘한 축생이 귀엽고 정이 많은 존재라는 걸 모두가 깨닫게 됐다. 21세기 리브랜딩 성공 사례를 책으로 쓴다면 고양이는 첫 챕터의 주인공이 되어야 마땅하다.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다. 18년을 살았으니 호상이었다. 독자 여러분에게 축생의 죽음을 애도해 달라 부탁할 생각은 없다. 시장 건강원에서 관절에 좋다며 고양이 진액을 팔던 시절이 끝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참고로, 관절에는 고등어 같은 등푸른생선이 좋다. 다큐멘터리 ‘나의 고등어 선생님’이 만들어지는 날이 온다면 대체재는 그때 다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