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원에서 2025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내 집은 여의도 불꽃놀이 명당이다. 정확히는 ‘한화 서울세계불꽃축제’ 명당이다. 명당이라기엔 좀 부끄럽긴 하다. 빌딩 숲에 가려 절반만 보인다. 괜찮다. 매년 불꽃 규모는 한화 이글스 성적만큼 오르는 중이다. 내년에는 한화가 낼 증여세처럼 오를 것이다. 절반만 봐도 충분하다.

축제가 끝나면 지적질이 시작된다. 꾸짖는 기사들이 지난해 기사들을 거의 ‘복사+붙여넣기’ 해서 나왔다. 환경에 나쁘다는 지적은 중요하다. 요즘은 친환경 화약을 쓴다니 근심은 좀 덜 해도 좋겠다. 시민 의식 지적하는 기사는 당연히 나왔다. 대통령도 국민에게 청소 좀 하라고 지적하는 나라니까 어쩔 수가 없다. 올해는 참신한 지적도 있었다. 세계적 행사인데 메시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잠시 고민했다. 불꽃놀이는 찬란하게 휘발하는 예술이다. 그냥 예쁘기만 해도 되는 예술이다. 어떤 메시지를? 북쪽에서 쏜 빨간 불꽃을 한강에서 쏜 파란 불꽃으로 감싸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글자가 피어오르는 그런 메시지? 내년 축제는 탁현민이 총괄을 맡으면 되겠다. 메시지가 터질 것이다.

2020년대는 메시지 시대다. 모두가 모든 분야에서 당연한 듯 메시지를 기대한다. 3초 안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사는 쇼츠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시대적 여성주의 영화 두 편을 예로 들자. ‘델마와 루이스’(1991)는 “넌 네가 타협한 만큼만 얻는 거야”라는 대사로 사회적 한계를 암시했다. ‘바비’(2023) 캐릭터들은 구조적 문제를 강의하듯 낭독한다. 은유의 시대는 갔다. 메시지를 눈앞에 던지는 직유의 시대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옛 정치인들은 교묘한 언어를 썼다. 회유하는 언어적 기교를 발휘했다. 종종 문학적이기도 했다. “저녁이 있는 삶”처럼 말이다. 요즘 정치 언어는 기교도 은유도 없다. 올 추석에도 너무 직접적이라 노골적인 메시지뿐이다. 독자 여러분은 조카들에게 ‘취업’과 ‘결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메시지에 집착하지 않으셨길 바란다. 조카들은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예쁘기만 한 휘발성 메시지를 더 좋아한다. 평소보다 두툼한 용돈 봉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