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손이 깨끗해야 한다.
청렴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청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인의 손은 늘 수많은 눈과 카메라에 담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긴 손톱이 때아닌 논쟁이 된 적도 있다. 우리 정서상 손톱이 긴 사람은 지저분하거나 적어도 게으른 사람이다. 나 또한 온종일 수많은 사람과 마주 잡아야 하는 손이므로, 손톱 관리는 예의라 생각했다. 정치인일 때는 그랬다.
목수의 손톱에는 검은 경계가 있다.
현장에서 점심쯤이면 “손 씻고 밥 먹으러 갑시다!”라는 외침을 듣곤 한다. 열심히 씻었다 생각했는데 막상 식당에 도착해 보면 손톱 끝에 때가 여전하다. 씻기 전엔 훨씬 더러웠다는 뜻이다. 이 손으로 내가 수저를 만져도 될까 싶어 둘러보면, 함께 앉은 선배들의 손도 비슷하다. 그러면 나는 “저 손 씻었습니다!” 당당하게 변명한 뒤 수저를 나누고 물컵에 물을 따른다. 선배들은 “잘 좀 씻지” 하면서 어쩐지 거뭇함이 조금 남은 손을 내밀어 수저와 물컵을 받아 든다.
목수는 손이 튼튼해야 한다.
선배들의 손은 대체로 마디가 두껍고 피부가 단단하다. 그에 비하면 내 손은 ‘섬섬옥수’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맥주 한잔 하다가 선배가 내 손을 보고 장난스레 “현장에서 일할 손이 아닌데~” 했다. 웃어넘기긴 했지만 사실은 그 말에 속이 꽤 긁혔다. 손에 쥔 잔에 맥주가 얼마나 남았었는지나, 구경거리가 된 손을 비추던 조명의 밝기 같은 것도 아직 기억한다. 손의 더러움보다 보드라움이 더 민망한 날이었다.
정치에서 손을 떼고 목공에 손을 댔다.
내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건 손을 보면 알 수 있다. 목공이 익은 선배들의 손은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데, 내 손은 자재 좀 옮겼다고 발갛게 익고 난리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유세장에서 시민들과 악수하던 손은 아직 현장에 어울리지 않았다. 과거에 배운 일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 손으로 벌어먹고 살려면 바뀌기는 해야 했다.
손이 변한 것으로 삶이 변했음을 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곧 1년, 이제 내 손에도 굳은살 정도는 있다. 손바닥에 생긴 네 개의 굳은살이 먼지 묻어 하얗게 보이던 날, 손바닥에 하얀 파도가 치는 것 같아서 손을 꼭 쥐었다. 키보드를 두들기던 손이 망치를 두드린다. 손톱은 너무 짧으면 오히려 불편해서 조금은 길러둔다. 분명 악수하기 좋은 손은 아니다. 다만 내 손은 이제 무겁거나 거친 자재를 다뤄도 예전만큼 아프지 않다. 깨끗한 손은 신뢰를 얻으려는 진심이고, 튼튼한 손은 신뢰를 만들려는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