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고속도로변의 황소 실루엣. 원래 오스본(Osborne) 회사가 1956년 셰리와인 홍보용으로 고안한 옥외광고판이다. 셰리 와인의 전통, 광고의 역사를 간직하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황소는 투우의 나라를 상징한다.

영화 ‘마이페어레이디’의 노래 중 “스페인의 비는 광야에 내립니다”라는 소절이 있다. 넓은 광야에 올리브와 아몬드, 참나무가 심겨진 풍경은 스페인 시골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여기에 군데군데 검은색으로 칠해진 황소들이 보인다. 스페인 전역에 90여 개가 있는데, 운전 중 눈에 잘 띄도록 둔덕 위에 세워져 있다. 7m 아니면 14m 높이, 수천 킬로그램의 무게를 갖춘 대형 구조물이다.

원래 1956년 오스본(Osborne) 회사가 셰리와인 홍보용으로 고안한 옥외광고판이다. 디자인은 아주 단순하다. 검은색 황소 실루엣에 회사 로고를 스텐실 기법으로 박아 넣은 게 전부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내구성을 위해 철재로 대신했다. 도로교통법 개정에 따라 철거 명령을 내렸지만 문화적·예술적 유산이라는 의견과 충돌하면서 1997년 대법원에서 유지가 결정되었다.

돈키호테의 풍차로 알려진 라만차 지역의 황소 실루엣은 여름이면 만개한 해바라기로 둘러싸인 풍경으로 유명하다.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 80주년이던 2017년에는 황소 위에 ‘게르니카’ 그림이 그려졌다. 2011년 마요르카섬의 유일한 황소 실루엣은 LGBT를 지지하는 뜻에서 무지개색으로 칠해지기도 했다. 올해 69년을 맞이한 이 황소들은 이제 하나의 문화적, 예술적 상징이 되었다. 1992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영화 ‘하몽 하몽’에 등장했고, 스페인 배경의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 세트에도 단골로 설치되고 있다.

스페인 고속도로변의 황소 실루엣. 간혹 지겹고 밋밋한 평야의 시각 환경에 자극을 주어 운전의 지루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셰리 와인의 전통과 광고의 역사를 간직하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황소는 투우의 나라도 상징한다. 지겹고 밋밋한 고속도로에서 시각적 자극을 주며 운전의 지루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상업적 구조물의 철거 여부를 신중하게 고민한 결과, 현재 황소 실루엣은 스페인 도로 풍경의 일부이자 국가적 기념물이 되었다. 문화재급은 아니지만 토속적이고 겸손한 작은 역사를 유지하기로 한 결정이 의미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