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연애사 좀 그만 알고 싶다. 소셜미디어는 남의 연애사로 넘친다.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연애사도 피해 갈 수가 없다. ‘좋아요’ 많이 받은 연애사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알고리즘을 타고 급습한다. 푸틴의 드론 폭격기도 그보다는 명중률이 낮을 것이다.
좋은 연애사는 거의 없다. 좋은 연애를 하는 사람은 연애사를 공개할 시간도 없다. 소셜미디어는 무슨, 네이트판 결혼·시집·친정 게시판 접속할 짬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현실이 행복할수록 매트릭스 세계와 멀어진다. 일단 나는 네이트판부터 끊어야 한다. 여러분도 끊길 바란다. 그걸로 기사 써서 매일 네이버 순위에 오르는 모 통신사 기자님도 끊으셔야 한다.
좋은 연애사가 없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좋은 연애사는 재미가 없다. 나쁜 연애사가 재미있다. 거짓말! 양다리! 환승! 빚! 유부남! 이런 단어가 등장하는 연애사가 아니면 알고리즘 사랑도 받을 수 없다. 사람들 필력도 이별이 비극적일수록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톨스토이가 행복했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살고 문학은 죽었을 것이다. 팝 음악계도 남의 연애사로 넘친다. 요즘 미국 가수들은 전 애인 저격하는 노래를 만드는 게 유행이다. 옛 가수들도 이별 후 명곡을 내곤 했다. 은유적이었다. 요즘은 직설적이다. 노골적이다. 타깃이 명확하다. 팝계 원 톱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 분야 원 톱이기도 하다. 그의 히트곡들은 전 남자 친구들의 길로틴이다. 배우 제이크 질런홀이 목을 쫙 펴는 자세를 잘 안 하는 이유를 추측해 보시라.
젊은이들이 연애에 소극적인 이유도 이젠 알겠다. 연애사가 곧 송사인 시대에 사랑 따위 하고 싶겠는가 말이다. 젊은이들 연애를 응원하는 나는 연애사 팔아서 ‘좋아요’ 얻을 생각은 없다. 연애를 못 해서는 아니다. 소셜미디어에서 대히트할 연애사도 있다. 더 늙고 감도 떨어져 ‘좋아요’ 숫자가 추락하는 날 공개할지도 모른다. ‘내 전 애인은 OOO 신도였다’가 제목이다. OOO은 아직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