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패다. 생수를 살 걸 처음 보는 음료를 골랐더니 너무 달다. 피곤한 터라 평소보다 조금 진한 음료를 마시고 싶었는데 반도 못 마시고 버렸다. 단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음료 취향이 보수적이다. 대개의 음료가 달기에 검증된 몇 가지 안에서 고르거나 생수를 마신다.

음료 취향이 보수적인 이유는 한 번에 하나의 음료를 사 먹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이 높다고 하겠다. 과자 취향보다 하드 아이스크림의 취향이 보수적인 이유도 비슷하다. 과자는 여럿이 혹은 여러 번 나눠 먹을 수 있지만 하드는 꼼짝없이 혼자 다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새로운 맛보다는 안전한 맛을 고르기 쉽다. 음료처럼 실패할 확률이 높은 분야라면 더더욱.

공연예술은 기회비용이 높다. 시간을 뭉텅 쓰고 비용도 천차만별인데 만족할지 장담할 수 없다. 휴대폰만 열면 볼거리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공연은 막이 열릴 때까지 알 수가 없고 빨리 감기도 불가능하다. 간만에 문화생활을 하고자 하룻저녁 시간을 내었는데 만족스럽지 않다면 집에서 편히 유튜브나 볼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공연예술가의 경쟁 상대는 다른 예술가가 아니라 유튜브와 넷플릭스다. 나는 공연장에서 초심 관객처럼 보이는 이들이 눈에 띄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공연이 끝난 후 이들이 “유명한 작품이라는데...”라고 소곤거리기라도 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간만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여길까. 다음에도 공연을 보러 올까.

예술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공연을 관객도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 관객의 눈으로 공연을 만드는 건 물론이고 해설과 이벤트, 홍보와 굳즈에 정성을 쏟는다. 그런데 모든 공연이 관객의 안전한 만족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건 아니다. 어떤 공연은 불편하고 어려운 길로 기꺼이 내디딘다. 그리고 관객을 도발한다. “돈 낸 만큼 보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보려면 오페라하우스에 가라. 예측하지 못한 걸 보려면 내 공연에 오라”는 안무가 제롬 벨의 말처럼 관객이 도전 정신으로 무장해야 하는 공연도 있다.

대학로 예술극장에 진열된 공연 팸플릿들. /정옥희 제공

이미 아는 맛과 아직 모르는 맛. 기회비용을 따지면 안전하게 선택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가 공연에 기대하는 건 익숙함 너머로 확장되는 경험이다. 나는 음료 코너에선 머뭇거리지만 극장에선 모험심이 차오른다. 아는 맛은 아는 맛이라 반갑고 모르는 맛은 도전받으니 두근거린다. 공연은 뽑기 기계와도 같아서 단번에 횡재하긴 힘들지만 뽑다 보면 뜻밖의 인생작을 만나게 된다. 실패할 여유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