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9월 25일 나는 천안문 앞에 서 있다. 오늘 청나라 절강성에서 작가 루쉰(魯迅)이 태어났다. 그는 중화민국 국민으로 1936년 10월 19일 죽게 될 것이다. 지금 천안문에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 않다. 당연하다. 그는 12년 뒤에나 태어나니까. 천안문에 마오의 초상화가 걸리는 것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선포식 때이다.
서양 의사가 되려고 일본 유학 중이던 루쉰은 수업 중 중국에서 러일전쟁을 치르는 일본군이 중국인 스파이를 참수하는 환등(幻燈) 슬라이드 사진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처형당하는 중국인을 맹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 사진 속 다른 많은 중국인들이었다. 루쉰은 인간의 무식과 어리석음을 증오했고, 이념 이전에 민족성을 바꾸고 싶어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게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던 시대는, 작가에게 행복한 것인가 불행한 것인가.
소설 ‘아Q정전’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그의 전집 중 소설책은 두 권뿐이고 산문이 대부분이며 번역도 많다. 그는 정직하기 위해 비판하는 치열한 산문가, 논쟁가, 계몽사상가였다. 하지만 루쉰에게는, 세상에 대한 환멸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허무 또한 선명했다. 그건 ‘혁명에 대한 불신’이기도 했다. 훗날 혁명이 일어난다면, ‘아큐’ 같은 쓰레기들이 설쳐대리라 우려했던 것은 그래서이다. 악마적 다독가였던 마오는 루쉰에게서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것들만을 취해 인민에게 상찬했다. 루쉰이 중국 근대문학의 수퍼스타가 된 데에는 그 영향이 크다.
마오는 루쉰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관을 ‘몰래’ 좋아했다고 나는 믿는다. 히틀러는 니체를 드러내놓고 오용했지만, 마오는 ‘남몰래’ 루쉰의 허무주의에 자신의 악마성을 ‘맘대로’ 대입했다. 문화혁명 당시 아큐 같은 홍위병들이 마오 어록과 더불어 루쉰 책을 들고 다녔으니, 예언가(?) 루쉰이 무덤에서 통곡할 일이다. 정작 요즘 중국에서는 루쉰이 격하됐다. 중국인들 욕을 너무 많이 해놔서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