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비행기 타는 걸 즐기지는 않는다. 나는 겁이 많다. 그리고 문과다. 이륙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상승한다. 머릿속으로는 타고난 문과의 질문이 쏟아진다. 이토록 거대한 쇳덩어리가 어떻게 뜨지? 추력으로 속도를 높여 양력을 이용해 중력을 이기면 뜨는 거라고? 나의 지력은 이런 조력을 받아도 무력하다.

뜨고 나면 다른 스트레스가 뜬다. 사람이다. 대중교통은 다 스트레스다.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건 편안한 일은 아니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이 대중교통 공간에서 벌어진다. 지하철은 탑승 시간이라도 짧다. 장거리 비행은 10시간을 함께 갇혀 있어야 한다.

비행기 옆자리 사람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다. 앞자리 사람이다. 좌석 등받이가 이유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내향성 인간이다. 등받이도 눈치껏 젖힌다. 이 정도면 뒷사람이 불편할까? 이 정도면 내가 불편한데? 이렇게 저렇게 젖히다 ‘타협의 각도’를 찾아낸다. 식사 시간이면 알아서 세우는 센스도 있다. 눈치 많은 내향인은 피곤하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너무 자주 앞자리 악당을 만난다. 어디까지 젖혀지는지 테스트라도 하는 것처럼 좌석을 젖히는 사람이다. 내가 사는 주식만 항상 떨어지듯이 내가 타는 비행기 앞좌석만 항상 폭락한다. 너무 젖히지 말라는 말은 소용이 없다. 뒷사람 불편을 헤아리는 사람은 그 정도로 젖히지도 않는다. 눈치 많은 내향인은 부럽다.

자유는 어디까지고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나는 좌석을 적정 정도로만 젖혀지게 설계하라는 주장은 할 수 없다. 척추 질환이나 아기가 있어 좌석을 더 젖혀야 하는 사람도 있다. 통제보다 조정이 먼저라고 믿는 민주적 내향인은 신념을 지키느라 피곤하게 산다. 해결책은 있다. 비즈니스나 일등석만 타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해결책이다. 이코노미 인생인 나는 오늘도 모두가 원하는 비상구 앞 좌석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이코노미 인생은 경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