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한참’이라고 할 때의 ‘참’은 한자다. 공문서와 공직자 이동을 위해 설치했던 옛 역참(驛站) 제도의 그 ‘참(站)’이다. 조선 시대 기준으로 참과 참 사이는 대개 25리(약 10㎞)니, 그 거리를 가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일진광풍(一陣狂風)이 불어닥쳤다”의 ‘일진’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군대가 전투를 위해 치는 것이 진(陣)이다. 그 진을 갖추는 포진(布陣)에 드는 시간이 곧 ‘일진’이다. 경우에 따라 짧거나 제법 긴 시간을 다 가리킨다.

‘일진’의 사전적인 뜻은 대열을 갖춘 한 무리의 병력, 또는 군대의 선두 등이다. 그러나 운동경기에서 국가대표 등의 상위 실력자 집단을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요즘 학교폭력의 단골 주체인 학생들을 일컫기도 한다.

글자 ‘진’은 일정한 장소[阝]에 전투 장비인 수레[車]가 있는 형상이다. 그로써 한곳에 모여 대열을 이룬 군대를 가리켰다. 싸움 상대의 그런 모습이 적진(敵陣)이고, 서로 싸우기 위해 마주한 두 군대의 상황이 곧 대진(對陣)이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로 치는 진은 배수진(背水陣)이다. 영화 등을 보려고 뱀처럼 길게 선 줄은 장사진(長蛇陣)이다. 은퇴와 동의어인 퇴진(退陣), 글 쓰는 사람 그룹인 필진(筆陣) 등도 다 익숙한 말이다.

글자를 ‘시간’의 개념으로 내려앉힌 단어로는 진풍(陣風)이 있다. 일정 시간 불어대는 바람이다. 중국에서는 소나기를 아예 진우(陣雨)라고 적는다. 문득 찾아와 때때로 이어지는 아픔을 우리는 진통(陣痛)이라고 표현한다.

요즘 동북아시아 진세(陣勢)가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중국과 북한, 러시아가 한데 뭉치는 모습이다. 독재와 전제주의 정권들이 이루는 진용(陣容)이다. 중국이 그 진두(陣頭)에 섰으니 저쪽의 ‘일진’이다. 그에 맞서는 우리도 진영(陣營)을 더 단단히 다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