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에 박치인 내가 몸치이기도 하다고 고백한다 해서 큰 반전이나 매력이 되진 않는다. 예상 가능한 조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탠퍼드대 재학 시절 만난 친구 엠버는 다르다.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 우주선이 우주 쓰레기를 피할 최적 경로를 계산해 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나사(미 항공우주국)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런 천재가 수업 교실 하나 제대로 못 찾아 친구에게 길을 묻는다. 이 모습이야말로 반전 매력일 것이다. 엠버는 만 18세에 ‘포브스 선정 30세 미만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올림피아드 대회를 석권했다. 이공계 난제는 척척 풀면서도, ‘썸남’의 마음은 읽지 못하겠다며 웃어넘기던 친구였다.
대학 새내기 시절 내 나름대로 가까이 지냈지만, 내가 한국에서 입대한 뒤로는 한동안 엠버와 연락이 끊겼다. 졸업 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한때 그녀가 의대에 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모두가 아쉬워했다. 하지만 누군가 “AI 벤처 캐피털에서 파트너로 일한다”고 정정하자, 모두가 회사 이름을 묻기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부터 끄덕였다.
물론 미국에서도 로스쿨과 의대는 인기 만점이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주역인 드라마 ‘슈츠’도, 명문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활약하는 ‘그레이 아나토미’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상위권 학생들이 당연히 의대나 로스쿨에 진학하는 일은 생각만큼 흔하지 않다. 화학 1등은 보통 대학원 연구실로 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우리에게는 낯설게 들린다.
최근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이 화제가 됐다. 직업·소득 중심의 진로 선택, 연구 개발 예산 부족과 지원 미흡이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다시 공대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열악한 연구 환경 때문에 의대로 방향을 트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렇다고 학생들이나 학부모를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니 실패 확률을 줄이는 선택만이 있을 뿐이라고.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는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정석의 길을 걷는 이를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언젠가, 어디선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에서 최근 ‘한국 대학 인재 엑소더스’ 특집을 연재했다.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 처우·환경만큼이나, 이공계 홀대 분위기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성적도 좋은데 왜 의대를 안 갔냐’는 말부터 듣는다”고 말이다.
문득 한국 유소년 축구의 문제점을 짚은 영상이 떠올랐다.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모험적 패스보다 소극적 플레이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정답이 정해진 움직임과 포지션 유지에만 익숙해진다. 실패 가능성이 있는 연구나 창업 대신 의대 진학을 숭배하고, 안정적 수입과 지위를 위해 기술·학문 발전을 희생하는 사회 분위기와 닮았다. 그러니 ‘이공계의 손흥민’이 탄생하기란 요원하다.
그저 개인 성취 문제가 아니다. 19세기 프로이센 재상 비스마르크는 “현대의 문제는 오직 철과 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21세기에는 칩(반도체)과 핀(금융)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건 국가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반전 매력이 호기심과 진취성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