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팔공산 자락의 어느 유서 깊은 고택 사랑채에서 숙박을 했던 적이 있다. 아침에 그 집 종손과 같이 겸상을 하는데 한마디가 와 닿았다. “해방 이후로 우리 집에 호남 사람이 와서 자고 가는 것은 조 선생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로 전라도 사람이 대구 안동 명문 고택에 필자처럼 자주 출입한 사례는 드물지 않나 싶다. 이것도 희한한 인연이다.
전라도 사람의 시각에서 AK(안동·경북)의 1급 양반 집안 후손들과 교류해 보니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는 귀문집(貴文集)이다. 조상들이 남긴 문집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이다. 후손들에게 돈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문집들을 번역하고 출판하는 데 공을 들인다. 둘째는 중연비(重聯臂)이다. 연비를 중하게 여긴다. 연비(聯臂)는 혈연·학연·지연 같은 인연이다. 수백 년 전에 조상들끼리 맺은 혈연이나 학연을 지금도 들먹이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문화이다. 셋째는 화문중(和門中)이다. 문중 대소사에 형편 되는 대로 참여함으로써 화합하려 노력한다.
다른 지역은 문중이 약화되었다. 여기서는 아직도 문중이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유교 문화의 정신적 본부는 도산서원이다. 유교가 중국에서 생겼지만 유교의 심장인 서원이 아직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동아시아에서 도산서원뿐이다. 마지막 보루이다. 도산서원의 원형 가운데 하나가 ‘향알(香謁)’이라는 의례이다. ‘향을 피우고 퇴계 선생을 뵙는다’는 뜻이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의 1박 2일 과정이다. 행사 전날 오후 4시쯤 도산서원에 10여 명쯤 참석한다. 별유사 2명, 재유사 5명, 강독유사 1명, 유림 집안 후손 3~4명이 참석한다. 저녁을 같이 먹고 한문에 해박한 강독유사(講讀有司)의 주관하에 퇴계 문집, 제자들의 편지글, 시(詩)를 밤 10시까지 같이 공부한다. 다음 날 새벽 5시쯤 일어나 퇴계 선생 위패를 모셔 놓은 상덕사(尙德祠)에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모인다. 향을 피우고 합동으로 큰절 2번을 한다. 걸리는 시간은 총 30분 정도. 이것이 ‘향알’이다.
최후의 서원 전통을 지키는 도산서원 원장은 김병일(80). 예산을 다루는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내고 도산에 들어왔다. 이 양반 사주를 보니 재물이 없는 무재(無財) 팔자인데 희한하게도 국재(國財)를 다루는 부서에만 주로 있었다. “퇴계 선생이 남긴 시 외우고, 봄에 매화 향 맡고, 선비 수련원 앞에 돌가루 깔아 놓은 길을 맨발로 걷는 재미로 삽니다.” 말년에 사치를 누리는 팔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