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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의 10년을 마무리하고 미국 프로축구리그(MLS·Major League Soccer)로 향했다. MLS는 1996년 미국 4대 메이저 스포츠 리그(NFL·MLB·NBA·NHL)의 틈 속에서 후발 주자로 출발했다. 늦게 출발했지만 장기적이고 독특한 전략으로 빠르게 성장해온 MLS는 이제 세계 5대 규모의 축구 리그가 됐다. 월드 스타 손흥민을 품고 펼쳐질 전략도 흥미진진하다. 손흥민의 결단도 그에게 선수 생활 후반기와 은퇴 후의 다양한 선택권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김성규

MLS는 10개 구단으로 출범했다. 당시 미국에서 축구는 대학이나 여성 스포츠 영역에 머물러 있었고, 프로 스포츠로서 기반은 미약했다. MLS는 ‘미국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축구 산업 모델’을 설계했다. 그 핵심은 세 가지다.

그래픽=김성규

첫째, 싱글 엔터티(Single Entity) 구조를 채택했다. 리그가 상업·선수 계약권을 소유하고 구단에 권리를 위임하는 형태다. 경쟁 과열을 방지하고 공동 번영을 도모했다. 리그가 하나의 법인처럼 움직이며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둘째, 팀 연봉 총액 상한제 즉 ‘샐러리 캡’을 통해 리그 전체의 재정 안정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지정 선수제(일명 ‘베컴 룰’)를 도입해 스타 영입의 유연성을 확보했다. 구단이 최대 3명의 스타 선수에게는 연봉 상한선을 초과하는 연봉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다. 데이비드 베컴, 티에리 앙리, 리오넬 메시 같은 글로벌 스타들의 진입을 가능하게 했다.

셋째, 승강제를 배제하고 미국식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채택했다. 이적 시장이 제한적이고 유럽과 달리 승강제가 없어 리그 역동성이 저하되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장기 투자와 지역 기반 운영을 유도해 팬들과 지역 사회를 구단의 ‘공동체’로 묶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효과를 봤다.

MLS의 전략은 팬, 연고 도시, 경기장 문화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우선적으로 18~34세의 젊은 세대, 다문화적 배경의 히스패닉 및 아시아계 이민자, 다양성과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디지털 세대를 핵심 타깃으로 삼았다. 도시 선정도 전략적으로 접근해 동·서해안(뉴욕·LA·새너제이), 중부 내륙(댈러스·콜로라도·캔자스시티), 정치 수도(워싱턴DC), 북동부(뉴잉글랜드)까지 전국적으로 균형 있게 배치했다. 열성 축구팬만이 아닌 일반 관중으로 고객 타깃을 넓히기 위해 MLS는 관람 경험(fan experience)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유럽 축구장 문화에 익숙한 팬이 MLS 구장에 가면 마치 테마파크에 온 것과 같이 어수선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입장부터 퇴장까지 심심할 틈이 없다.

특히 MLS는 히스패닉 시장 공략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월드컵 중계권을 미국 내 유통할 목적으로 설립한 리그 자회사인 SUM(Soccer United Marketing)은 멕시코 대표팀의 미국 내 경기 유치·중계권·스폰서십을 독점 운영했다. 이를 통해 미국 내 멕시코 축구 콘텐츠의 핵심 상업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SUM은 MLS와 멕시코 리그 간의 마케팅, 방송, 팬 이벤트, 상품 기획 및 판매를 통합한 공동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로써 북미 축구 산업 전체의 팬과 브랜드, 미디어 자산을 통합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전략은 MLS가 리그 안팎에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갖추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이 결과 MLS는 구단 수가 10개에서 30개로 3배 증가했다. 평균 구단 가치는 1200만달러에서 6억9000만달러로 약 57배 상승했다. 연간 리그 매출은 1500만달러에서 2025년 기준 20억달러로 130배 이상 성장했다. 단순한 경기 운영 조직을 넘어 경쟁력 있는 IP와 콘텐츠 플랫폼으로 확장에 성공한 셈이다.

MLS는 축구 메가 이벤트를 성장 촉매로 활용해 왔다. 2016년 중남미컵 100주년을 기념한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대회, 2025년 FIFA 클럽월드컵, 그리고 2026년 열릴 북중미 월드컵이 대표적이다. 이들 대회는 MLS 구단 연고지를 중심으로 개최되며, 리그는 인프라, 인력, 운영 조직에서 주최 단체의 실질적 파트너 역할을 한다. 1억5000만 명의 팬 유입과 170억달러의 경제 효과가 예상되는 북중미 월드컵을 통해 MLS는 NBA를 넘어서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2023년 리오넬 메시의 인터마이애미 이적은 MLS의 산업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연봉 계약이 아니라, 애플TV, 아디다스와의 공동 마케팅, 팬 상품 파트너 파나틱스(Fanatics) 등과의 수익 배분, 그리고 구단 지분 옵션까지 포함된 리그 공동 파트너십 모델이었다. 메시라는 수퍼 스타를 ‘개별 팀의 선수’가 아닌 ‘리그 전체의 IP 자산’으로 구매한 것이다.

그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글로벌 미디어 파트너인 애플TV의 MLS 시즌 패스 신규 가입자는 46% 급증했다. 인터마이애미의 구단 가치는 6억달러에서 12억달러로 상승했다. 전체 MLS 구단 가치도 2배 이상 증가했다. MLS의 글로벌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도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손흥민의 이적은 MLS의 아시아 시장 확보와 또 한 번의 계단식 성장을 노린 전략적 포석이다. 그는 유럽 무대에서 커리어 정점을 찍은 아시아 출신 월드 클래스 선수이자, 브랜드와 미디어에서 확장성이 뛰어난 자산이다. 손흥민의 MLS 진출은 단순한 ‘후반기 커리어’의 선택이 아니라, ‘축구를 제일 잘하는 리그’에서 ‘산업적으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시장’으로의 자리 옮김이다. LA FC에서의 몇 년간 활약과 미국 시장에서의 존재감 확보를 통해 은퇴 후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다. 손흥민이 새로운 리그에서 보여주는 축구와 함께 역동적인 미국 축구 산업을 관찰하는 것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